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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Aug 28. 2023

마라톤 훈련 6주 차 - 가끔은 그런 날도 있지

마라톤 훈련 6주 차

400미터 인터벌
4마일 템포
6마일 장거리주



16주 마라톤 훈련의 6번째 주를 맞이했다. 지난주에 12마일 대회를 뛴 후유증이 의외로 거의 없어서 가볍게 한주를 시작했다. 시작은 그랬다.



화요일 : 2마일 템포 후 400미터 인터벌 6회

그룹훈련을 하는 화요일. 이번주 메뉴는 2마일 템포를 한번 뛴 후, 400미터 인터벌이었다. 템포와 인터벌을 같은 날에 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800미터가 아닌 400미터라는 사실이 큰 위안이었다. 대신 이번주에는 독특하게 비포장 흙바닥에서 인터벌을 진행했다. 달리기를 할 때는 딱딱한 포장도로보다는 부드러운 흙바닥이 발목 부상 예방에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굳이 뛰어본 적은 없어서 이번에 거의 처음으로 뛰어보았다. 


이날 인터벌을 진행한 구간은 고운 흙이 아니라 조금 큰 모래, 혹은 아주 작은 자갈이라고 할만한 돌이 덮여있는 구간이었다. 여기서 이지페이스로 뛰는 것이 아니라 전력질주로 인터벌을 하는 거라서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었는데, 발이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흙바닥 오솔길을 400미터 달린 후, 3분 휴식, 그리고 포장도로로 나와서 400미터를 되돌아오는 식으로 훈련했다. 발이 미끄러지는 것에 긴장되기도 하고, 미끄러지는 만큼 킥백(kick back)의 반동이 적기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아 400미터가 아니라 500미터 이상 뛰는 기분이었다. 대신 그 흙길을 뛴 후 포장도로로 같은 거리를 돌아올 때는 속도가 훨씬 빨라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져 훈련의 보람이 컸다.


800미터 인터벌에 비해 심리적 부담이 훨씬 적어서 6번 하고 훈련종료.



수요일에는 개인훈련으로 5Km가량을 가볍게 뛰는 메뉴를 소화했다.



목요일 : 4마일 템포런

지금까지 가민 앱을 통해 하프마라톤 훈련을 여러 번 해봤는데 그때마다 템포런이라는 게 뭔지 대략은 알아도 정확히는 몰랐다. 이번에 코치가 설명해 준 바에 따르면 "좀 힘들다"싶은 정도로 뛰는 것의 다른 말이 "템포런"이라고.

5K 같은 단거리(우리 마라톤 러너들은 5km를 단거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대회처럼 전력을 다해 뛰는 것이 아니라, 하프마라톤 대회 페이스 정도로 시작해서 10K 대회 페이스 정도까지 올리는 중-상 강도의 달리기가 템포런에 적당하다고 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뛴 하프마라톤은 올해 5월에 열린 브루클린 하프였다. 당시 부상이 있기도 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10마일을 넘으면 절대 10분/마일 속도 이상으로는 못 뛴다는 스스로의 벽이 있었기 때문에 평균 페이스가 10분 10초/마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후, 다이어트로 몸이 가벼워진 것과 꾸준한 마라톤 훈련을 병행한 결과로 12마일(하프마라톤은 마일로 계산하면 13마일) 대회를 8분 45초 페이스로 뛰었으니 이제는 내 하프마라톤 페이스를 9분이라고 해도 좋겠다 싶어서 9분/마일로 시작했다. 후반 2마일은 8분 정도 페이스로 뛰고 싶었지만 이날부터 뭔가 몸이 무겁고 피로감이 느껴져서 8분 15초 정도를 겨우 유지하고 훈련 종료.



기본적인 개인 훈련정보는 가민 앱에서 보지만, 공유를 위해서는 STRAVA를 사용한다. 

요즘 나는 스트라바가 너무 재미있다. 거의 매번 달리기를 할 때마다 "기록경신" 메달 마크가 뜰만큼 내 체력이 향상되고 있음이 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몸은 무겁고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은 2마일 최고기록 경신 마크가 떴다. 앞으로 남은 10주를 착실히 훈련하면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풀마라톤 4시간 이내를 달성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차올랐다.




달리기 글만 쓰니까 꼭 전업 달리기 쟁이(?) 같지만 사실 주부인 데다가,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가 있고, 간간히 프리랜서 일도 한다. 요즘은 우리 집 어린이가 방학이라 집에서 많이 지루해하길래 이날은 친구 한 명을 더해 아쿠아리움에 데려갔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놀라운 발전이다. 예전엔 애 하나 데리고 어디 외출이라도 하고 오면 저녁밥을 못 지을 만큼 지치곤 했는데, 이제는 아침에 4마일 템포를 뛰고 나서도 아쿠아리움에서 6시간이나 돌아다닐 만큼 체력이 붙었다.



그렇다고 후유증이 없지는 않았는데.....




주말 : 6마일 장거리주

금요일 아침에는 빗소리에 잠을 설칠 정도로 비가 심하게 왔다. 잠은 진작에 깼지만 굳이 뛰고 싶지 않아서 금요일 개인 달리기는 패스. 이제부터는 날씨 훈련도 병행해야 해서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무조건 뛰라고 친구들이 권했지만 전날 아쿠아리움에서 과로(?)한 여파인지 쉽게 몸이 일으켜지지 않아 오랜만에 느즈막까지 아침잠을 즐겼다.



토요일에는 6마일 장거리주가 예정되어 있었다. 원래 한번 쉬어가는 주로 지난주에 6마일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12마일 대회가 있었던 관계로 이번주와 일정을 서로 바꿨다. 12마일도 뛰는데 6마일쯤이야 가볍지! 하는 마음으로 출발했으나 비도 많이 내렸고, 생각보다 너무 발걸음이 무겁고 숨이 차서 1.5마일 지점에서 포기했다. 이번주에는 훈련을 과하게 한 것도 아닌데, 15마일도 아니고 1.5마일을 뛰고 지쳐서 멈춘 나 스스로에게 굉장히 놀랐고 실망했다. 



평생에 나에게 없었던 운동신경이, 뼈를 깎는 3년간의 노력으로 드디어 나에게도 생겼나 싶은 순간에 허망한 불씨처럼 이렇게 사그라드는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풀 마라톤 sub4도 불가능은 아니라는 희망에 부풀었던 게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같이 뛰던 친구가 베이글을 사주고 위로해 줬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듯, 능력이 사라지는 것도 그렇게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좋은 말을 남기고...



여러모로 분석한 결과, 전날 아쿠아리움에서 너무 많이 걸어 다닌 것, 웜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일당 8분 이하라는 엄청난 속도로 시작한 것, 그리고 비가 많이 온 것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 나는 비 오는 날에도 나가 뛸 만큼 열정적인 러너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대회날 날씨운이 좋아서 비가 온 적이 거의 없어서) 비 오는 날에 뛰어본 경험이 없다. 비가 오면 일단 공기가 습해 호흡이 힘들고, 옷이 젖어 무거워지고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기 쉬운 점 등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으니 이것도 앞으로 10주간의 훈련기간 동안 적응해나가야 할 과제다. 

작년에는 뉴욕시티 마라톤날 이상기후로 기온이 20도까지 오르고 (보통 11월 초 뉴욕은 10도 이하), 중간에 비가 내리고 습도가 엄청나게 높은 등 온갖 악조건이 한 번에 왔다. 내가 뛸 올해에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날씨 훈련도 필요하겠다. 



무엇보다도 날씨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나는 비가 오면 뛰는 게 너무 힘들더라"는 스스로의 강박관념을 지우는 데에 있다. 10마일 이상의 거리를 매주 뛰면서 거리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과 같은 이치로, "비 그까짓 거 좀 내리면 어때 나 많이 뛰어봤는데"라는 마인드를 갖기 위한 훈련이다.



거기에 하나 더, 이날 달리기가 그렇게나 힘들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나의 개인적인 호르몬 문제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체력이 급하강되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온다. 그런데 이것도 천편일률적으로 "여자는 생리 시기가 오면 체력이 급하강됩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누군가는 생리 기간에 체력저하를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배란기에, 누군가는 생리 직전에 등등 개인차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훈련량과 컨디션을 잘 살펴서 내가 어느 시점에서 체력저하가 크게 오는지를 캐치하고 그에 맞게 훈련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1.5마일로 토요일 장거리주를 마쳤으나... 

안 하고 심적 고통을 받느니 해치워버리고 신체적 고통을 받는 편을 택하는 성격인 나는 6마일을 채우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토요일 내내 고통받다가 결국은 일요일 아침에 5마일을 채우고 평안을 얻었다. 물론 욕심내지 않고 속도를 낮춰 컨디션을 세심하게 살피며 달렸다. 



오랜만에 가벼운 페이스로 한 시간가량 뛰니 머릿속에서 "생각"이라는 걸 할 여유가 생기고, 지난 며칠 동안 불안했던 체력저하와 앞으로의 일정 등등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 5주의 훈련은 끊임없이 우상향이었다. 거의 매번의 달리기가 신기록이었고, 대회에서도 나 나름 흡족한 결과를 얻었다. 이대로만 가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떻게 늘 우상향일 수 있는가. 가끔은 내려가는 날도 있고, 정체되는 날도 있는 게 정상이거늘. 한동안 그게 정상임을 잊고 쉼 없이 위를 향해서만 달려가던 나에게, "가끔은 이런 날도 있지"를 깨닫게 해 준 의미 깊은 6주 차 훈련이었다. 



앞으로 남은 10주의 훈련,

다치지 않고, 끝까지 즐겁게. 

지금부터 뛰는 모든 걸음걸음이 뉴욕시티 마라톤 그 자체임을 잊지 말자는 스스로의 다짐과 함께.





평생 운동치 몸치로 살아온 여자의

인생 첫 마라톤 도전기 [인생에서 한 번은 뉴욕마라톤을 뛰자] 매거진에서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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