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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Sep 06. 2023

마라톤 훈련 7주 차 - 강해진다는 믿음

마라톤 훈련 7주 차

업힐 20분, 릴레이
21km 롱런
2km 첫 트레일 러닝


컨디션이 저조했던 6주 차를 보내면서 음식에 신경을 썼다. 봄에 다이어트를 하면서 음식을 최소한으로 먹다가 7월부터 마라톤 훈련을 시작하면서 무절제하게 많이 먹었다. 무절제하게 먹어도 건강하게 먹으면 괜찮은데 절제의 끈을 풀어버리면서 밥, 빵, 면에 집착하는 원래의 식습관이 되돌아온 것이 화근이었다. 

체력이 달린다는 핑계로 아무거나 집히는 대로 먹고, 러너는 원래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달콤한 핑계를 대며 아무거나 먹으니 체력이 올라가기는커녕 떨어짐을 느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탄수화물을 먹더라도 야채와 단백질을 먼저 먹은 후에 탄수화물을 먹도록 신경 썼다.


조금씩 체력이 회복됨을 느끼면서 7주 차 훈련을 시작했다.




화요일 : 20분 업힐 트레이닝, 릴레이 경기

이번주 그룹 트레이닝은 언덕길에서 쉬지 않고 20분간 왕복하는 훈련을 했다. 언덕을 올라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거라서 업힐과 다운힐이 반복되는데 속도는 인터벌처럼 너무 욕심내지 말고 20분 내내 쉬지 않고 뛰는 것에 집중하라고 했다. 



20분이 생각보다 되게 길다. 계속해서 업힐을 뛰는 거라면 아마 못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다운힐을 내려올 때는 또 할만해서 "아 이제 그만하고 싶다"와 "이 정도면 할만한데?"를 반복하다 보면 20분이 끝난다. 



20분 업힐을 끝낸 후에는 승부와 상관없는 릴레이 경기를 했다. 세 명씩 그룹을 나눠 동그란 트랙을 한 바퀴씩 나눠 뛰는 형식이었다. 릴레이는 인터벌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는 같은 그룹이 된 나머지 두 명이 느린 편이라서 휴식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내 차례일 때 정말 전력을 다해서 뛰었다. 

다만, 장거리 달리기만 하는 우리들에게 익숙지 않은 트랙이었기 때문에 급커브를 돌아야 하는 구간에서 발목에 무리가 많이 가는 게 느껴졌다. 부상에 조심하면서 화요일 훈련 종료.



수, 목, 금은 별다른 특별한 훈련메뉴 없이 하루에 5km씩 뛰었다.



토요일 : 장거리 13마일 (21km)

지금까지 토요일 장거리는 10마일~12마일 정도로만 뛰었는데 이번주에는 훈련메뉴가 1마일을 더해 13마일(21km)였다. 조금씩 거리를 늘리는 과정이다. 

늘 그렇듯이 공원에 모여 30초(마일당 페이스) 단위로 소그룹을 나누고 출발했다. 나는 늘 10분/마일 그룹과 함께 뛰었는데, "늘"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것이 올해 6월 들어서야 비로소 10분 그룹에 낄 수 있게 된 거고 그전에는 10분 30초 그룹이었다. 



이번주에는 10분/마일은 나에게 조금 느린 것 같다는 코치의 조언에 따라 처음으로 9분 30초 그룹과 함께 출발했다. 사실 개인 페이서와 뛸 때는 9분 정도까지도 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10분 그룹을 고집했던 것은 대화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요일 그룹런은 속도보다는 거리에 목적이 있는 거라서 대화를 많이 한다. 특히 10명 이상의 사람들과 함께 뛰려면 이 사람 저 사람과 쉼 없이 대화를 한다. 물론 나는 영어가 짧아서 주로 듣는 역할이지만 모국어도 아닌 영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체력 소모가 심해서(?) 빠른 그룹으로 옮길 용기가 여간해서 나지 않았다. 특히나 이미 친구가 많이 생긴 10분 그룹을 떠나 새로운 그룹으로 가면 또 모르는 사람 투성이라서 더 많이 말을 해야 할 테니 더더욱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한 번만 용기를 내서 새로운 그룹과 함께 뛰면 또 거기서 친구가 생기고 다음 주는 한결 수월해질 테니 큰 마음을 꿀떡 먹고 그룹을 바꿔보았다. 생각보다 9분 30초/마일 그룹도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내가 10분 30초 그룹에서 뛸 때는 아예 만나본적도 없었던 멤버들을 알게 된 것도 기분 좋은 자극이었다. 





이날은 코스가 브루클린에서 출발해서 맨해튼까지 가는 루트였지만 나는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빨리 집에 돌아와야 해서 9Km 지점에서 그룹과 헤어져 혼자 브루클린으로 되돌아왔다. 말을 하지 않는 만큼 속도가 빨라져서 13마일(총 21km)을 끝냈을 때는 내 개인 하프마라톤 최고기록보다 빠른 시간에 러닝을 마쳤다.


 

안전하게 통제되어 달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대회 코스에서 젤까지 먹어가며 뛴 개인기록을, 신호대기가 있는 일반 도로에서 젤 없이(평소 트레이닝 때는 젤은 안 먹고 전해질 캔디만 먹는다) 경신한 것에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그간의 훈련이 결과로 나타나는 게 눈에 보여 큰 힘이 되었다. 




일요일 : 첫 트레일 런

토요일에 하프마라톤 거리를 개인 최고기록으로 뛴 것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는데 그 후에 나는 운전을 3시간 30분 동안 했다. 하프는커녕 10Km 대회만 뛰어도 집에 올 때 물집 투성이인 발로 기어 왔던 2020년을 생각해 보면 정말 큰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주말에 10마일 이상을 "재미로" 뛰는 이 사람들은 일상생활은 되긴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늘 있었는데, 나도 이제는 주말 아침에 10마일 이상을 뛰고 일상생활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원래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만 하는 건 줄 알았더니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나도 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쌓아온 노력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내 몸에 새기고 새겨온 시간과 거리와 그 모든 발걸음은, 돈이나 재물처럼 누가 와서 훔쳐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매일매일 러닝슈즈를 신을 때마다 느낀다.



3시간 반이나 운전을 한 이유는 캠핑을 가기 위해서였다. 느긋하게 텐트도 치고 모닥불에 이것저것을 구워 먹고 자연을 만끽했다. 숲 속은 벌써 가을이라서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지만 기분 좋은 피곤함에 금세 잠이 들었다.



요즘 나는 마라톤 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습관도 하나 만들었다.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서 바로 달리기, 아니면 적어도 걷기라도 한다. 마라톤 트레이닝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해서 일요일과 월요일은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이지만 그날도 5시 30분에 일어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지 않았는가. 생각보다 몸이라는 건 어리석어서 반복적으로 새기고 새겨야 겨우 말을 듣는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고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에게 학습시키기 위해서, 일어나면 일단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일정임을 주입시키기 위해서 5시 30분에 일어난다. 



이날도 전날의 피로가 없지 않아 있었지만 5시 30분에 눈이 떠졌고 바로 몸을 일으켰다. 밖이 많이 어두워서 조금 기다린 다음, 원래는 운동을 쉬어야 하는 날이지만 먼 곳까지 왔고 흔치 않은 기회이니 속도와 거리를 대폭 줄여 조금이라도 뛰기로 했다. 캠핑장은 아주 넓고 가운데에 호수와 습지도 있는 큰 주립공원이었다. 트레일 코스도 거리별로 다양하게 있었지만 핸드폰 전파가 거의 없어서 길을 잃을까 무서운 마음에 가장 쉽고 짧은 트레일을 골라 2km 정도만 뛰었다. 

주로 포장도로만 뛰어본 나에게 트레일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조용한 숲 속을 혼자 뛰는 기분도 좋았고, 발소리가 "착착 착착"하고 나는 아스팔트 러닝과 다르게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는 것도 좋았다. 



평생 운동은커녕 야외활동 자체를 즐기지 않았던 내가 그 피곤한 캠핑 2일 차 아침에 트레일 러닝이라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웃음이 다 난다. 

요즘 8살짜리 딸아이가 레고에 심취해 있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한번 만들었던 것을 다 부수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듯이, 마라톤 트레이닝은 어쩌면 나 자신을 완전히 부수고 새롭게 쌓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마라톤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마라톤이란 피니쉬라인을 통과하는 순간의 모습이며, 메달을 목에 걸고 환히 웃는 모습일터이다. 

하지만 40년을 살아온 이 몸을 완전히 부수고 새로이 쌓아가는 이 모든 과정이 마라톤임을 절절히 깨닫는 모든 순간들. 이것이 바로 진짜 마라톤을 뛰어본 사람들이 말하는

마라톤일 것이다.




평생 운동치 몸치로 살아온 여자의

인생 첫 마라톤 도전기 [인생에서 한 번은 뉴욕마라톤을 뛰자] 매거진에서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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