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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담 Aug 07. 2024

나의 러닝 용품 - 양말

러닝을 처음 시작했을때는 정말 많이도 아팠다. 근육통은 물론이요, 발목이 아프다 무릎이 아프다 하여간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러다가 주거리가 늘어나면서부터는 물집이 가실날이 없어서 그것도 은근히 아팠다. 물집의 가장 악랄한점은 똑같은곳에 다시 생긴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팬데 또패는” 고약한 아픔이다. 악 소리나게 아픈건 아니지만 겨우 아물기 시작한 부위에 다시 물집이 생기는건 아는사람만 아는 고통이다.



그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양말질(?)과 신발질(?)을 시작한것이.

나는 내전이 심해 장거리를 뛰면 어김없이 엄지발가락 안쪽에 물집이 생겼다. 게다가 발가락이 섬섬옥수… 손이 아니니 섬섬옥족이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발가락이 길어서, 발톱이 옆 발가락을 긁어 상처가 나는 일도 흔했다.

그래서 발가락 양말도 한동안 신었다. 온갖 예쁜 양말의 유혹이 있었지만 발이 아픈것보다는 발가락 양말을 택했다.



쿠션이 좋은 두꺼운 양말이 좋다고도 들어서 그런것도 신어보고, 아니다 발에서 열을 빼야 물집이 덜 생기는거다 하길래 얇은것도 신어봤다.

군대에서 행군할때 물집을 방지하는 비법라길래 스타킹같은 재질로 된 양말을 속에 한겹 더 신어보기도 했고, 종아리 압박을 줘야한다고 해서 니하이 삭스도 한동안 신었다.

친구가 선물로 보내준, 발목에 태극기가 콱 박힌, 우리나라 국대들이 신는다는 양말도 신어봤다.



그렇게 5년.



결론은,

발이 닳고 닳으니 양말은 아무거나 신어도 더이상 물집은 안 생기게 되었다.

4천 km를 뛰는 사이 나에게 딱 맞는 신발도 찾았으니, 어지간히 새신발을 신고 무리한게 아니면 물집이나 상처 걱정도 없어졌다.




그렇게 양말을 아무거나 잡히는대로 신고 뛰던 어느날. 나는 만나버린 것이다 인생 양말을.




그 양말은 나의 애증의 브랜드 트랙*미스에서 나오는 양말인데

이 가격에 이 두께에 이 재질이 최선인가!!! 하고 화가 날만큼 별것아닌 재질이다. 딱히 굉장히 보드랍지도 않고, 압박이 있는것도 아니고, 언뜻 보면 나이롱같이 보이는, 어디하나 특별할게 없어보이는, 그냥 일상용처럼 생긴 양말이다. 심지어 불량율도 높아서 사자마자 포장을 뜯어서 잘 확인하지 않으면 구멍이 있을수도 있다.



발에 신으면 착 감기면서 뭔가 뛰고싶게 만드는 그런 느낌도 없다. 사이즈는 3가지로 나오는데 그냥 뭐… 그냥저냥 양말을 신었구나 하는 느낌 정도다. 그런데 거기에 신발을 신고 달리러 나가면… 기적의 양말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발 얘기고, 케바케 발바발이다)



다섯개의 발가락이 자유롭게 따로 움직일수 있으면서도 양말이 겉돌지 않고, 크루넥이 전혀 흘러내리지 않는데 압박감도 없다. 말 그대로 ‘안 신은것 같은’ 느낌이다. 트랙*미스의 옷이 전반적으로 안입은것 같은 느낌을 주는게 특징이라 그런가 양말도 그렇다.

양말의 착용감이 없으니 신발의 장단점을 극대화한다. 어느날은 달리기를 하러 나가면서 ‘오늘 신발이 유난히 발에 착 붙네’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이 양말을 신은 날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비오는날에 일어난다.

비 오는 날에는 우천용 트레일화를 신고 뛰는데 트레일화는 물에 덜 젖을 뿐, 안 젖는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양말은 젖은채로 신어도 젖은 느낌이 거의 안 난다.

오늘 신발 방수 선방했네! 하고 들어와서 신발을 벗어보면 양말이 젖어있는데, 뛰면서 그걸 못 느낄 정도로 쾌적했다.




그러니 애증의 트랙*미스이건만,

에라이! 나 불매할래!!! 하다가도

슬쩍 몰래 가서 양말은 사오게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두려울 정도다. 트랙*미스가 이 양말을 단종시키면 나는 어떻게 달려야 하나 막막할 정도다.




라고 극찬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 발 바이 발이다. 나이키 알파플라이인지 뭔지가 좋은 신발이라고 누구에게나 좋은건 아니듯이, 양말로 물론 그러하다.

어디까지나 “나에게는” 부적에 가까운 양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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