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국에 살고있기 때문에 거리 단위가 “마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마일 이라고 들으면 머릿속에서 한번 km로 변환을 해야해서 한박자 늦게 ”우와!“ 하는 시차가 발생한다.
그래도 달리기쟁이라면 변환 과정 없이 바로 알아듣는 거리가 있으니
3.1마일 (5km)
6.2마일 (10km)
13.1마일 (하프)
26.2마일 (풀 마라톤) 되겠다.
km 단위를 전혀 안 쓰는 미국에서도 5k, 10k대회는 흔하게 열린다. 다만 거리의 공식 단위가 마일이기 때문에 대회 코스 중간중간에 있는 거리 표식도 마일로 되어있다.
10k 대회를 가면 1km단위로 10번 표식이 있는게 아니라 1마일, 2마일, 3마일 하는식으로 있다가 6마일이 지나면 저 멀리 쌩뚱맞게 피니쉬라인이 보이는 식이다.
단위가 이렇게 똑 떨어지지 않으니 기분상으론 이미 다 뛴 6마일 지점부터 피니쉬라인까지의 0.2마일이 보통 야속한게 아니다. 지금껏 달려온 6마일보다 그 0.2마일이 더 길게 느껴진다.
그럼 그 0.2마일정도는 에누리(?)를 해줘도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아니 내말좀 들어보세요.
저는 이 대회를 위해 비가오나 눈이오나 쉬지않고, 먹고싶은 음식이나 술담배도 절제해가며 훈련해왔다고요.
코스에서 반환점을 돌때도 일말의 부도덕함 없이 칼같이 유도선대로 돌았고 코스를 가로지르거나 깎아내는 부정행위는 일체 하지 않았어요.
다른 러너를 방해하는 행동도 하지 않았고 급수대에서 물을 마실땐 수신호를 주는 매너있는 러너라고요.
그럼 꼬다리 0.2마일정도는
“아휴. 고생하셨으니 이정돈 깎아드릴께. 너무 힘드셨죠? 6마일에서 피니쉬하세요” 해줘야 하는게 인지상정 아닌가요?
하지만 어디 그렇단 말인가.
코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훈련을 막 빼먹고 방탕하게 술도 마시며 질펀하게 훈련기간을 보낸 사람이나
코스 반환점을 잘라내는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에게도
마라톤 코스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42.195km다.
마라톤 준비기간도 그렇다.
평균적으로 4개월 (16주)간 훈련을 하는데 더 길어도 안되고 더 짧아도 안된다는게 공론이다. 그런데 이 4개월 사이에 어디가 다치는 경우도 있고, 가족 대소사가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른다.
나는 지금 지병인 천식이 도져서 달리기는 커녕 일상생활도 힘든데,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하루하루 훈련메뉴를 소화하며 출발선을 향해 가고있다.
내가 훈련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고, 게을러서도 아닌데…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 기침을 하느라 잠도 못자고 달리기도 못한 나의 시간도 똑같이 흘러간다.
그게 어떻게 보면 불공평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심신이 고달프다.
결과는 조금 아쉬웠어도 정말 열심히 한거 아니까 만점 줄께요~ 가 통했던 학생 시절이 지나고나면
모든게 이런식이다.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결과적으로 피니쉬라인을 통과하지 못하면 DNF.
이게 극도의 공평함이라는것인지
아니면 산다는건 원래 이렇게 불공평한 것인지.
다음 롱런때 아주 잘근잘근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