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잘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나약한 나로서 허무한 이 게임에서 이기는 하나의 수는, 게임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나만의 반항이자, 의미일 것이다. 무의미한 시스템 안에서 '이기려는' 시도 자체가 사실은 지는 것일 수 있다. 나에게 이 시스템을 부술 힘은 없더라도, 적어도 그 시스템이 원하는 방식으로는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때로는 나에게 삶의 의미를 불어넣어 준다.
우린 그저 놓여 있고 의미를 각자 찾아야 한다. 모두는 절묘하게 자신의 상황에 맞게 불행하고, 자기만의 작은 의미를 통해 살아가야 한다. 그 속에서 진리를 논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듯, 진리인 것처럼 우리 곁에 존재하는 사회적 통념들을 한 개인으로서 부정하고, 비판해 보는 것도 삶의 의미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 같다. 사회 속에, 우리 곁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기준들을 깨부숴 보고 싶은 것이 요즘 내 삶의 의미이다.
우리에겐 생각보다 더 많은 자유가 있다. 이를테면, 부당할 때 내 앞의 사람의 뺨을 칠 수 있다. 나이 차이에 따라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관습을 부정하고, 윗사람에게 반말을 뱉어버릴 수 있다. 물론, 그에 따른 사회적 페널티나 법적 책임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상상해 볼 때 자유 의지를 갖고 그 선택을 실현할 수 있을 만큼의 여백은 분명히 존재한다. 또, 결혼을 하되 예식을 올리지 않는 것과 같이 사회적 기준과 충돌하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에서조차 삶의 에너지는 솟아난다. 무조건적으로 반골의 길로만 빠지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에겐 적어도 '당연한' 기준들을 선택하지 않을 정도의 자유는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주체성을 부여받으며, 한층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명목 하에 존재하던 기준들을 그저 하나의 옵션으로서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인간은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는 늘 불안을 동반한다. 그런 순간엔 과감히 기준 뒤로 숨으며 잠시 안전한 의미를 빌려 살아가도 좋다. 다만, 언제든 다시 반항을 시작하고, 주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내면의 결심만은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삶의 방식이다.
이 글은 문제투성이의 글이지만, 때로는 극단적 정신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점투성이의 글 자체도 때로는 글 속 오류 지적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 더욱 효과적으로 통념을 뒤흔들고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진정한 동력을 줄수도 있다. 삶을 살아가며 가끔은 질문하고 재구성하며, 획일화되어 있는 사회 구조에, 또, 이분법적 사고에 적극적으로 반항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