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풍향계 | #4
SNS 콘텐츠 소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댓글이다. 유튜브는 2021년 9월, 영상을 전체화면으로 전환해도 댓글란을 볼 수 있는 기능을 업데이트 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댓글을 인기순, 최신순 등으로 정렬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댓글은 이제 더이상 소비의 산물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에는 이미 있는 영상에 사람들이 단 재밌는 댓글들을 붙여 재발행한 파생 콘텐츠가 산재해있다. 댓글은 호모 플랫포무스의 놀이문화이고, 거대 플랫폼들은 놀이터를 제공한다.
네이버는 2020년에 연예기사 댓글을 폐지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댓글을 염탐한다. 알고리즘은 공감이나 좋아요를 많이 받은 댓글을 상단에 보이게 노출하고, 상위권에 등극한 댓글 주인은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는 정신적인 포만감을 얻는다. 댓글놀이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동안, 모두의 사고방식에는 플랫폼이 침투한다. 호모 플랫포무스는 상단의 댓글을 다수의 의견, 가장 옳은 의견으로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는 이유로 그 댓글은 신빙성을 획득하고, 더 많은 정보를 검토하기 귀찮은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선택한 댓글을 본인의 생각과 일치시킨다. 집단 정체성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그 댓글에 공감 표시를 하거나 대댓글을 작성하고, 알고리즘은 이런 콘텐츠를 널리 퍼나른다.
플랫폼은 댓글 문화를 굉장히 영리하게 활용하는데, 알고리즘을 통해 댓글이 치열하게 달리는 영상들을 널리 퍼뜨린다. 업자들이 종종 얘기하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좋아요 보다 싫어요가 더 많은 영상이 더 잘 퍼뜨려지는 영상이기 때문에, 싫어요를 많이 받을 법한 영상을 만들어 댓글 전쟁을 촉발시켜서 조회를 끌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가끔 이야기가 진전되면 어떤 단어들로 댓글 꾼들을 등장을 불러올 수 있는지까지 흐름이 이어지기도 한다. 비록 농담이지만, 이는 알고리즘이 댓글의 개수와 속도를 정량화하여 영상의 품질을 판단한다는 웃을 수 없는 현실에 기초한다. 호모 플랫포무스들은 알고리즘이 띄워준 소수의 영상을 클릭하며 댓글 전쟁을 맞닥뜨린다. 한층 격앙되어있는 전쟁터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호모 플랫포무스들은 이전보다 더 감정적이고, 이전보다 더 파편적이며, 이전보다 더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사고한다.
콘텐츠 공급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공급자의 입장에서 댓글은 한 가지 용도가 더 있다. 바로 댓글의 향방에 따라 콘텐츠의 생명이 결정된다. 2021년 초를 달궜던 스튜디오와플 <헤이나래>는 댓글로 시작해 프로그램이 폐지된 대표적인 예시였다. 화요일 6시에 발행한 3화는 실시간으로 조회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고, 댓글은 "재밌다" "신선하다"는 긍정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콘텐츠의 재미와 출연자들의 드립에 감탄하던 14시간이 지나고, 다음날 오전 커뮤니티에서 비판 여론이 일면서 이들이 하나둘씩 댓글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결국 출연자의 성희롱을 제기하는 댓글 판도가 우위를 점하자 여기저기서 기사화되었고, 24시간 후 프로그램은 폐지되었다. 같은 콘텐츠를 봐도 다른 생각을 갖고 그것을 댓글로 나타낼 수 있지만, 헤이나래는 흡사 전쟁처럼 전개되었다. 대중의 풍향계 자리를 두고 페미니즘 진영과 반페미니즘 진영은 댓글과 대댓글을 전장으로 삼았고, 콘텐츠 공급자들은 이를 관전했다.
댓글이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풍향계가 되는 건 헤이나래 뿐만이 아니다. 어떤 지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소비자의 반향이 올지 예측할 수 없는 공급자들은 댓글 반응을 기준으로 콘텐츠 속 내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이른다. 모 채널에는 2011년부터 방영한 tvN <코미디빅리그> 클립이 쌓여있다. 지금의 성인지 감수성으로 보면 논란이 될 법도 한 내용들이 더러 있다. 의사가 레깅스와 브라탑을 입은 환자 보호자의 외모에 정신이 팔려 의사로서의 신념을 저버리는 행위가 개그로 승화된다. 어떤 이들은 상황에 따라 의견을 휙휙 바꾸는 주인공에게서 재미를 느끼지만, 또 다른 이들은 출연자의 외모에 대한 평가와 음담패설을 하며 콘텐츠를 소비한다. 하지만, 이 영상에 노출된 소비자들은 그에 불편함을 느끼는 집단이 아닌 모양이다. 오히려 요즘은 이런 개그를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 토로와 과거 향수에 대한 댓글이 다수를 이룬다. 콘텐츠 공급자들은 댓글이 쌓이는 양상을 보며 콘텐츠의 윤리성을 판단한다. 댓글 반응이 괜찮으니 이 정도 내용은 넘어가도 되겠다. 댓글은 콘텐츠의 생명력을 판가름하는 심판자가 된다.
소비자의 건전한 의사표현이 댓글로 표출되는 경우도 많다. 윤리적이지 않은 많은 콘텐츠들도 댓글의 포화를 맞고 사라지거나, 윤리성을 갖춰가기도 한다. 하지만 댓글이 소비자의 의사표현으로 나열되는 과정에서 플랫폼 알고리즘이 개입한다. 인간은 영상에 달린 수백개의 댓글과 대댓글을 모두 다 읽을 수 없고, 이를 포착한 플랫폼은 공감과 좋아요가 높거나, 대댓글이 많이 달린 댓글 위주로 상단에 띄워준다. 콘텐츠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첫 댓글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사람도 상단의 댓글 위주로 노출이 되면서 자기의 의견과 일치화하는 과정은, 마치 삼인성호의 디지털 확장판과도 같다. 상위 5개의 댓글이 콘텐츠의 특정 부분을 문제라고 지적하면, 처음에는 그에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어느새 설득이 된다. 약간명의 지지를 받은 댓글은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서 대다수의 의견으로 포장이 되고, 콘텐츠 공급자들에게는 대중의 나침반이 된다.
댓글이 놀이문화가 되면서 공급자는 내재적인 윤리 기준을 빼앗겨버렸다. 방송사는 심의팀이 존재하고, 이들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규정에 의거하여 폭력성, 선정성, 기타 위해성 등 측면에서 콘텐츠 수정 의견을 제작진에 전달한다. 하지만 플랫폼에 콘텐츠를 내보내는 제작자들은 심의 기능을 갖추고 있지 않고, 그를 평가할 수 있는 방통위와 같은 기관이나 단체도 부재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 공급자들은 대중의 풍향계를 바로 콘텐츠 윤리성의 기준으로 삼게 된다. 콘텐츠가 불편하다는 댓글이 달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콘텐츠는 윤리성을 통과한 콘텐츠가 된다.
콘텐츠 공급자의 플랫폼 중독 고찰
#1 콘텐츠를 플랫폼에 올리는 일을 하는가? https://brunch.co.kr/@mrtolstol/7
#2 제작자도 플랫폼에 중독된다 https://brunch.co.kr/@mrtolstol/24
#3 알고리즘은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 https://brunch.co.kr/@mrtolstol/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