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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용 Feb 05. 2021

Day 10, 피디가 한다는 일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당신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그 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mryon

 7년째 피디로 방송국 일을 하고 있습니다. 피디란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 걸까에 대한 규정을 저는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목소리 내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빅 스피커가 되어주는 일’. 이것이 가능케 하기 위해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설득이 전부입니다. 수많은 스태프부터 그 목소리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까지요.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일종의 사명감인 것 같아요. 살면서 뭔가 묘한 위화감이 있는데 그걸 바꿔보겠다는 사명감이랄까요. 21세기 인류.. 그러니까 지금의 우리는 사실 과거에 비해 아는 것도 많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꽤 명확하게 아는 ‘진화된’ 존재이지만, 정작 과거보다 내 주변은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만 해도 윗집에 누가 살고, 아랫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지구 반대편의 브라질 대통령이 누구고, SpaceX가 유인우주선을 ISS에 보냈다는 것은 익히 알지만, 정작 내 이웃은 잘 모른다는 건 조금 이상한 일 아닐까요.

 허나 요즘은 대위기입니다. 티비를 보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어요. ‘미안한데 티비를 잘 안 봐서요….’ 라는 말이 인사가 되어버린 요즘, 나는 그럼 누구를 위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를 고민합니다. 빅 스피커가 된다 한들 청중이 사라진 곳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고민 말입니다.

 이런 생각도 해보고 있어요. 내 사명감의 대전제가 틀렸을 수도 있겠다.. 적어도 지금 다수의 군중은 티비를 오락 그 자체로 보고 있구나.. 고리타분한(?) 제작자들이 사명감, 최후의 보루라는 나름의 명분으로 시간을 채우고 있구나.. 라는 생각. 의미만 쫓다가 모두가 떠나버린 빈자리에 남은 사람 같아 퍽 쓸쓸하기도 합니다. 어느 게 정답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피디라는 직업은 티비라는 물건의 역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아무도 그 고민은 하고 있지 않을 테니까요. (웃음)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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