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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용 Feb 04. 2021

Day 1,
당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나요?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첫 번째 질문드립니다.
당신은 요즘 당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나요?
마음에 든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mryon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수많은 과거의 누적된 결과가 ‘지금’이라고 한다면, 제게 2020년은 험난한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요약해 얘기하자면 '험난한 일들 안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옴짝달싹 못 했다’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웃음)

 연초에 영혼과 시간을 온전히 갈아 넣어 준비하던 프로그램이 의도치 않은 논란에 휩싸이면서 1년 동안 고생했던 팀의 노고가 한순간에 부정당하는 일을 겪기도 했고, 그 이후 옮긴 팀에서 새 프로그램 론칭 준비를 하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공황 앞에서 속수무책 고꾸라지고 말았지요.

 돌이켜보면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화가 나면 화가 난 대로 내질렀더라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도 있긴 합니다. 속으로 삼켜버리다가 이른바 ‘고장’이 나버린 건데요. 마지막엔 결국 제가 찍어온 것들을 제 손으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방송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저의 나약함(?)을 가장 탓하게 됐습니다. ‘조금만 버텨냈으면….’이라는 뒤늦은 후회 말입니다.

 삼키고 삼켰던 마음의 소리들이 ‘소리화’되지 못한 채 결국 후회가 되는 모습을 경험하며, 저는 병가에 이어 휴직을 결심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얻은 시간에 숨통이 조금 트였지만, 머지않아 ‘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더군요. 스스로를 소개할 때 ‘티비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 김승용’이라고 하곤 했었는데, 지금의 저는 무엇으로 규정을 지어야 하는가가 굉장히 혼란스럽습니다. 조금 전 이야기했던 <나를 지탱했던 삶의 기준에 생긴 균열>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죠.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이제 갓 돌이 넘은 아이와 함께 공원도 가고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나를 소개할 때 ‘애 보는 애 아빠, 이준이 아빠 김승용입니다’라고 소개할 수 있을는지 말입니다.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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