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편 06. 코로나 1년, 탈서울을 실행하다

[탈서울] 스라봉의인생찾기요람6_코로나육아

by 문슬아

우리 부부는 결혼 전부터 탈서울을 꿈꿨다. '제주 1년살이를 해볼까', '치앙마이 코끼리 파크에서 발룬티어로 1년만 지내볼까', '1년간 여행을 다녀볼까' 여러 가지 궁리를 하며 들떠있었다.


하지만 신혼 초, 계획하지 않은 생명이 찾아왔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아이를 키우는 일에 초점이 맞춰졌다. 아무래도 밥벌이가 중요했다. 일자리가 주어진 '서울'에 대출영끌해서 급하게 보금자리를 얻었다. 그 곳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는 서울에서 어린이집도 다니며 여섯살 소년이 되었다.


아이의 고향 서울에서 우리는 6년을 버티듯 살았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늘 귀농, 귀촌, 슬로라이프 같은 먼 데에 가 있었다. 그래도 그런 삶은 한 10년 뒤의 일이라 생각했다. 나날이 치솟는 서울 전세값에 밀려나기 전에 자발적으로 떠날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20년 1월, 우리는 ‘급’ 김천으로 이주했다.


오래된 빌라 건물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서울 변두리 산동네, 빛 한줄기 제대로 들지 않는 10평 남짓의 다세대 빌라가 보통 2-3억이 넘어간다. 그래도 세 식구가 서울에 발 붙이고 살 수 있게 해준 보금자리여서 감사했다.


그러다 19년 코로나가 터졌다. 첫째의 가정보육과 집콕생활이 이어졌다. 어린이집에 확진자 발생으로 자가격리자 신세를 면치 못했는데, 그 와중에 뱃속에 또 한명의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다. 난 입덧으로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일상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나와 에너지 뿜뿜인 여섯 살 아이가 작은 집에 콕 박혀 24시간을 그것도 열흘이나 넘게 지내야 하는 건 정말, 너무 고된 일이었다.


무의식에 눌러놨던 탈서울에 대한 욕망이 몸 밖으로 솓구쳐 나와 ‘실행력’이 되었다. 우리는 조금은 즉흥적인 결정으로 서울에서 김천으로 도망치듯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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