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으로, 불안 너머의 삶을 위해

4인가족의 탈서울 유랑기_[김천살이]

by 문슬아

임신 36주 만삭의 몸으로 김천으로 이사한 나는 길도, 사람도, 억양도, 자잘한 행정절차들고. 그리고 택시기사님들의 거친 운전도 모두 낯설어 조금 외로웠다.


서 있으면 밑이 빠질 것 같고, 앉아 있으면 허리가 뽀개질 것 같고, 누워 있으면 명치가 눌려 답답한 임신 막달. 몸이 무거워 어딜 다니질 못하니 섬처럼 무료하고 우울하기도 한 나날들을 보냈다.


밤만 되면 시작되는 뱃속 아가의 딸꾹질과 발길질, 가진통으로 날밤 새는 날들이 많았다. 새벽녁에 일어나 순간순간 떠나온 서울을 떠올리며 거기서 누리던 사람들, 마음들에 가끔씩 울컥하기도 했다.


낯선공간만큼 적응이 염려되는 지점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이의 유치원 입학이었다.


서울 봉제산 자락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자유로운 영혼 그대로 제약없는 일상과 자연을 누리며 느슨하게 살아왔는데, 김천에서 다닐 유치원은 아이들도 많고, 해리포터 같은 원복도 입어야 했기 때문에 더 마음의 벽이 생겼더랬다.


나는 아이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너무 일찍 제도권 교육에 밀려들어가는 건 아닌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KakaoTalk_20210215_213440992_02.jpg


하지만 산처럼 커진 내 배만큼 어느새 훌쩍 자란 첫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의 나의 염려와 불안과 상관 없이 자기 속도대로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이사를 오면서 친구들과 헤어지는 걸 처음에는 힘들어했는데, 한 명 한명 잘 인사하고, 헤어지는 시간을 가지며 마음을 선물했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 와서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재미와 이 곳 김천의 고유한 빛깔들을 벌써 누리고 적응해갔다.


이제는 제법 자기의 감정과 상황만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감정과 생각도 묻고, 자신의 욕구를 조절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내 생각보다 마음의 힘이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을 하게 된다.


KakaoTalk_20210105_124028493_03.jpg


어찌되었든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 이 아이는 이미 자기 몫의 삶을 너무 잘 살아가고 있음을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잘 믿어줘야 할 것 같다고 다짐했다. 내 불안으로 아이를 좁은 세계에 가두지 않기를, 스스로 넓은 세상을 만끽할 수 있도록, 나는 그저 사랑의 안전기반이 되기를.


부디 유치원에 잘 적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둘째 출산 걱정만 하기로 했다.

하지만 곧...암담한 현실에 부딪히게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