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희철 교수
경남 창원에 사는 김모(72세) 씨는 평소 가슴이 답답하고 밤에 잠을 잘 못잔다. 입맛도 없을 뿐더러 뭐라도 먹으면 탈이 나 입에 음식을 대기가 무섭다. 최근에는 부쩍 두통이 심해지고 몸 이곳저곳이 쑤시고 아프다. 내과, 신경과 등을 전전했지만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가슴은 더욱 답답해지던 중 딸의 권유로 방문한 정신과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국내 우울증 진료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10명 중 약 4명이 60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우울증 환자(83만7808명) 중에서 60세 이상은 37.7%(31만5546명)에 이른다. 노년기 우울증이 매우 흔하게 발생함을 알 수 있다.
또한 통계청의 ‘2020년 사망통계’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 사망자 수는 1만3천195명으로 전년보다 4.4%(604명)가 줄었는데, 고령층 자살 비율은 가장 높게 나타났다. 80세 이상은 67.4명, 70대가 38.8명에 달했다.
노인 우울증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인 정신의학분야의 권위자인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희철 교수를 만나 노인 우울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해결책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은 불안을 증폭시켰다. 상상의 나래를 끝없이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한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침대에 못박혀 있는 상상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다울 , 《천장의 무늬》, 웨일북, 2020, 58쪽.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 김희철 교수는 노년기 우울증의 첫 증상은 우울한 기분으로 표현되기보다는 두통·위장장애 등의 신체증상이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인지기능장애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아파본 적 없는 부위에 통증이 생길 수도 있는데 때문에 우울증 초기 환자들은 정신건강의학과보다는 내과 등의 타 진료과를 찾는다. 하지만 진료를 받으면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울증은 일반적으로 우울하고 불안한 증상과 수면장애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어르신들은 우울하다는 감정 자체를 표현을 잘 못하시는 경우가 많고요. 기운이 없거나, 잠을 잘 못잔다거나 이런 증상을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해 방치하는 부분도 있고. 이런 심리적 문제들이 보통 신체 증상으로 많이 표현됩니다.
문제는 환자분들이 일반 내과나 다른 여러 곳을 아무리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해도 뚜렷한 원인이 안 나온다는 거죠.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건 또 아니니까 답답할 수밖에 없고요. 그러다 누군가 정신과에 한번 가서 상담을 해보라고 해서 오시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내과적 진찰에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데도 환자들이 계속 신체 증상을 호소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꾀병이나 관심을 얻기 위한 행동으로 생각해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기억 장애에 대해서는 치매로 오인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것이 노년기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하게 치료를 받게 하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노년기 우울증을 디택션(detection, 발견)하는데 있어서 크게 두 가지 측면의 장벽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까 말씀드린 신체 증상으로 표현되는 부분들이고요. 두 번째가 우울증으로 인해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노년기 인지장애 즉 치매와 겹쳐있는 지점도 있어 노인 우울증과 관련해서 임상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아니면 정확한 감별이 어렵습니다.”
우울증은 치매와 증상이 비슷해 진료실에서도 ‘가성(가짜) 치매‘라고 부른다. 치매와 유사한 집중력·기억력 저하 등 인지기능장애가 흔하기 때문이다. 치매를 의심해 병원을 찾는 노인 환자 10명 중 4명은 치매가 아닌 노인성 우울증이라는 학계 보고도 있다.
김희철 교수는 우울증과 치매를 감별하기 위해서는 기억장애의 특성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울증도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기억력과 집중력이 일관되게 계속 떨어지는지, 아니면 컨디션에 따라서 달라지는지 잘 살펴봐야 하죠. 우울증 환자들은 기분이 좋을 때는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좋아졌다가 기분이 처지고 우울해지면 기억 장애가 심해지는 변동이 있을 수 있고요.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인지기능이 아주 서서히, 조금씩 나빠집니다. 반면에 우울증은 기억력도 좋고 정신도 말짱하시던 분이 갑자기 길을 잘 못 찾는다던가, 집중력이 확 나빠진다거나 그럴 수 있거든요. 또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 치매 초기단계에서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게 우선인지 잘 살펴봐야 정확하게 감별할 수가 있는 것이죠.”
노인 우울증은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회복률이 80%나 되지만 치매로 오인하면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울증을 초기에 잘 치료하면 우울증으로 인한 여러 가지 신체증상도 좋아지고 인지기능 장애도 충분히 호전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장기화되면 그 자체가 치매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거에요. 과거에 가성치매라고 해서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치매증상도 치료하면 개선되는데 일부환자들은 치료 후 우울증상이 좋아지더라도 치매는 여전히 진행되기도 합니다. 초기에 알츠하이머가 진행되면서 우울증이 동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요. 이런 분들은 인지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초기에 치매 치료를 병행하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지속적인 외로움은 물론 단 2주 정도의 짧은 고립도 개인의 몸과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 외로움,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노리나 허츠, 홍정인 역, 《고립의 시대》, 웅진지식하우스, 2021, 38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은 노인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서울시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대종 교수와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 연구팀의 추적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노년기 우울증의 발병 위험은 코로나 전보다 2배 가량 증가했다. 우울증 병력이 전혀 없던 노인도 우울증 발병 위험이 2.4배 올랐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많은 노인분들이 찾아오십니다. 대부분이 가족들 못 만나고, 기존에 나가시던 복지관 못 나가고 집에 혼자 있게 되니까 외롭다고 말씀하시고. 또 고령자는 코로나 고위험군이었기 때문에 걸리면 사망하실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커서 바깥 활동을 안하시고 사람도 전혀 안 만나시는 그런 분들이 많았거든요. 불안, 답답함, 외로움 등 아주 다양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보니까. 이런 것들이 우울증이 증가하는데 아주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후 노인들의 또래 커뮤니티가 상당 부분 무너지고 자녀 또는 손주와 만나는 횟수도 크게 줄었다. 그래도 가족들이나 주위에 정기적으로 안부라도 물을 수 있는 이웃이 있으면 버틸만하지만 그마저도 힘든 독거노인은 정신질환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김희철 교수는 독거노인, 가족체계가 붕괴된 가구, 저소득층 노인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사회적 고립이 가속화될수록 정신건강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경고했다.
“과거에 비해서 경로당이나 복지관이 잘 되어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코로나 상황에서 이런 시설들이 전부 문을 닫았죠. 어르신들은 그나마 잘 가던 곳이 복지관인데 강제로 혼자 있어야 하니 머릿속에는 잡생각 밖에 안 들고.
사실 우울증은 주위의 사회적인 지지체계만 잘 구축되어 있고, 주위에서 잘 서포트만 해줘도 상당부분 좋아지거든요. 그런데 독거노인 분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우신 분들. 이렇게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은 주위에 그런 지지 체계가 없기 때문에 상황이 더 심각할 수밖에 없죠.”
우리 사회는 65세 인구가 전체 20%를 차지하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김 교수의 말대로 노인인구 중 특히 취약한 집단은 혼자 사는 노인이다. 통계청이 올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1’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 독거노인은 지난해 기준 총 167만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노인 인구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9.6%로 2000년(16.0%) 이후 늘어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가고 있죠. 자녀들은 성인이 되면 다 분가하고 배우자 사별로 혼자가 되시는 분들이 많아질 게 분명한데, 함께 사는 가족이 없기 때문에 외로움이나 우울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또 나이가 들면 다양한 질환에 자주 시달리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도 힘들어 지거든요. 그나마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병원도 다니고 심리치료도 받고 할 수 있는데 가난한 분들은 그럴 수가 없죠.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립되기가 훨씬 쉽습니다.”
고립감과 외로움이 깊어지면 우울증이 된다. 노년기 우울증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노인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들 중 노인 자살률이 높은 국가이다. 그중에서도 독거노인의 자살률은 더 높다.
“이건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사례관리를 하고, 사회적 지지 체계를 좀 더 강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고요. 이런 분들을 위한 심리지원 확대가 정책적으로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노년기 우울증은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 따라서 치료 시 복합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우울증이 심하지 않을 때는 환자에 대한 심리적 지지와 사회적 관심만으로도 증상이 좋아질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적절한 항우울제 투여와 같은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신체적 질병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반드시 전문의에 의한 포괄적인 의학적 검진이 요구된다.
“기질적인 원인에 의해서 생기는 우울증이나 동맥경화, 혈액순환 장애로 뇌에 공급되는 혈액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혈관성 우울증’은 약을 써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우울증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대개 노년기 우울증은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닌 이상 심리적인 부분을 잘 다뤄주면 나아집니다. 약은 최소량을 사용하고 더 중요한 것은 상담과 사회적 지지 체계가 잘 받쳐 주는 것이죠. 노인분들은 이미 기존에 드시던 약도 많거든요. 혈압약, 당뇨약 등 최소 대여섯가지 입니다. 여기에 정신과 약까지 쓰면 약물 상호작용으로 인해 부작용을 경험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정신과 약물 치료를 꺼리게 되는 악순환이 생기죠.”
실제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다약제(polypharmacy) 복용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자 중 5개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이 약 260만 명, 10개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고령자는 81만 5000여명에 이른다. 복용약물 개수가 늘면 약물 상호작용과 중복처방의 위험도 커진다.
“노인 환자분들에게 약을 처방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일반 성인 용량의 1/3정도 되는 저용량으로 시작해 서서히 증량하면서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죠. 고령자일수록 약물 대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반 성인에 해당하는 용량을 쓰면 초기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약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약을 저용량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환자분이 충분히 납득한 상태에서 약을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르신들 중에는 ‘정신과 약 오래 쓰면 치매가 생긴다’거나 ‘바보가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대부분의 약은 안전합니다. 약을 씀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방치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보다 크기 때문에 불필요한 두려움은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 전문가에 의해서 잘 쓰면 훌륭한 약이 되는데, 노인 전문가가 아닌 일반 병원에서 자칫 잘못 처방을 하다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는거죠. 그래서 이 분야에 임상경험이 풍부한 전문의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노인 우울증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균형 잡힌 음식과 운동을 통해 정서적 저항력을 키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사실 손쉬운 방법이란 없습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운동 하는 게 좀처럼 쉽지가 않죠. 그럼에도 매일마다 잠시라도 밖에 나오셔서 따뜻한 햇볕 받으면서 걷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치매 예방은 물론 햇볕에 노출되면 우리 몸의 면역력도 높아지기 때문이고, 우울증 개선에도 효과가 있고요. 그런데 이것도 혼자 계시면 하기가 힘들어요. 신체적으로 불편하신 분들은 그나마 이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때문에 주변에서 적극적인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한데. 그래도 요즘은 백신도 맞고, 오미크론 독성도 약해졌기 때문에 사회 복지시설이나 집 근처에 있는 노인정이라도 좋으니 사람 만나는 걸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고 마스크 잘 쓰고 개인 위생 잘 챙기면서 일단 누구라도 만나는 게 참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가끔 어르신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60-70대만 돼도 노인정에서 제일 막내랍니다. 더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 잔심부름만 하고 대접도 못 받고 하니까 가기 싫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시설에 종사하시는 분들, 사회복지사 분들이 이런 사례들도 잘 관리하고 신경을 쓸 수 있도록 정부에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경로당과 사회복지관이 다시 제 역할을 찾았지만 일부 어르신은 외부인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텃세로 더위 쉼터에 쉽게 입장하지 못한다.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허준수 교수는 “다른 노인들과 관계를 맺지 못한 노인들이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건데, 관계 형성을 위한 프로그램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소규모 복지 시설에 대한 인력 확충도 보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 전 생애에 걸친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을 수립한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은 노년기를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시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마다 수백 명의 노인이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쓸쓸히 세상을 떠나는 나라에서 노인의 삶의 행복 추구는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인 세대의 사회심리적 불안과 우울을 간과하지 않고, 이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이해와 제도적 관심이 더욱 필요한 때다.
※ 건강매거진 데이드 (2022년 5월)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