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일찍 일어날 결심을 한다. 운동을 할 결심을 한다. 인스턴트 음식을 줄일 결심을 한다.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을 결심을 한다. 쓸데없는 지출을 줄일 결심을 한다. 영상을 너무 오래 보지 않을 결심을 한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을 결심을 한다. 타인에게 조금 더 친절할 결심을 한다.
이하 구만 구천구백구십구 가지의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대부분 작심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결실 없는 상태로 머무른다. 내게 있어 결심이란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 내가 변화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되는 것들이고, 그런 결심들을 품은 나는, 늘 현실이 아닌 이상으로 오늘이 아닌 내일로 빠르게 내달린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들을 놓치고 미래와 이상으로 내달릴수록 나의 마음은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두둥실 떠오른다. 좁고 답답한 상자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허수아비와 사자와 양철 나무꾼의 손을 잡고 흥미진진한 모험을 떠난다.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스치면 신나게 바람 속을 내달린다. 호기심에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눈을 반짝인다.
그러다 작고 뾰족한 바늘이 스리슬쩍 닿기만 해도 뻥- 이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진 형국을 하고는 쭈글쭈글 어디 쓰기도 뭐 한 것이 원래 뭐였는지 분간하기도 힘든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나의 결심은 폐기된다. 순식간에.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내가 그토록 원한 것은 결심을 이루어가는 지지부진한 시간은 쏙 뺀, 결심이 이루어진 미래를 상상하는 것뿐이었다는 자각이 든다. 손과 발을 움직여 땀 내는 일은, 시작도 하기 전에 미루고만 싶어 진다. 부담스러워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이쯤에서 결심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하나, 결심하는 척하지 말 것. 둘, 머릿속 소설을 그만둘 것. 머릿속 상상의 나래만 펼치는 것 그건 결심이 아니라 결심하는 척 흉내만 내는 것이니. 셋, 결심을 이루어가는 지지부진한 시간을 빼먹지 않을 것. 그런 시간이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일지도 모르니. 그 시간을 잊지 말 것.
결심에 대한 입장 정리라고 썼으나 결심에 대한 결심이라 읽히는 걸 보니, 이번 결심도 작심삼일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밀려온다.
뻥- 아아 풍선 터지는 소리는 너무너무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