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다시 한번 더 크게. 심장이 방망이질하고 다리가 점점 느리게 움직인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올라갈 층수가 올라온 층수보다 적어졌을 때,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아채고, 결의에 찬 기세로 호흡을 다잡고 또다시 계단을 오른다... 9층, 10층, 11층, 12층
저 멀리 복도를 타고 활짝 열려있는 현관문을 통해 어린아이의 씩씩거림이 들린다. 고작 백 센티 남짓한 짧은 다리로 아파트 13층 계단을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마침내. 고지에 다다르고. 활짝 열린 현관문으로 쪼르르 들어와 소리친다. "새콤달콤!!!!!!!!"
장렬히 거실에 대자로 쓰러져서는, 하도 꼭 쥐어 뜨끈뜨끈 해진 그것을 바라본다. 내 사랑, 딸기맛 새콤달콤. 직사각형의 껍질을 벗기고 영롱한 핑크빛 자태가 달콤한 향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입안에 넣으니 금세 침이 고인다. 달달함이 입안 가득 퍼지고, 기분 좋은 만족감이 온몸을 감싼다. 음, 행복해!
단칸방에 살던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두해 전,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페인트 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신축 아파트. 그곳에서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게 되었는데, 줄 몇 가닥에 의지해 까마득히 올려다보는 15층까지 사람을 실어 나른다는 그 신문물이 나는 여간 못 미더웠다.
실은 좀, 무서웠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사랑 딸기맛 새콤달콤이 먹고 싶어질 때마다 엄마 손을 질질 끌고 슈퍼에 갔다 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는 큰 결심을 하고 나 홀로 외출을 감행했다, 엘리베이터를 노려보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삼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제2 제3의 무수히 많은 나의 사랑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장렬히 거실에 대자로 쓰러져서는 기분 좋은 만족감이 온몸을 감쌀 때만큼, 혹은 그보다 더 큰 행복감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13층 계단을 오르내릴 만큼 손에 꼭 쥐고 싶은 것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너는 그런 수고로움을 지불하려 들지 않는 거야. 누군가 대신 해 줬으면. 나는 핸드폰 액정으로 손가락만 움직이는 딱 그 정도의 수고로움만 지불할 테니.
백원도, 딸기맛 새콤달콤도, 꼭 쥔 주먹도, 음, 행복해! 거실에 대자로 누워 웃음 짓던 꼬마도.
모두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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