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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Sep 15. 2023

개인 레슨 그만두고 피아노 학원으로 간 사연

아이와 나와 피아노


두 시간씩 연습한 결과, 지난번 진도 나간 페이지는 솔찬이 수월해졌다.

"자 그럼, 다음 나가볼게요."

선생님이 얘기한 대로 다음 장은 많은 부분 앞장의 반복이었고, 중간중간 약간의 변형이 있었다. 긴장과 흥미를 동시에 일으킨다는 '변형'이지만 여기 미숙련공은 다시 걸음마다. 승모근은 잊지도 않고 바짝 올라가 활약 중이고. 헤매는 제자가 조금 더 수월하게 칠 수 있도록 손가락 번호를 악보에 표시하던 선생님이 문득 지친 내 얼굴을 보고 웃음을 머금는다.

"여기 네 마디가 앞이랑 달라서 어렵지요."

멍한 표정을 거두지 못했지만, 미소 짓는 선생님 얼굴을 마주 보니 절로 웃음기가 덧입혀졌다.

"하하... 네. 익숙하지 않아서." 한 뜸 후 이어 말했다.

"괜찮아지겠지요."       


지금 내뱉은 말. 왠지 익다.

아 그래, 밥 먹을 때. 기사감의 정체는 오늘 아침 아이에게 내가 해준 말이었던 것이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예나 지금이나 초등학생 아이들의 흔한 코스, 하교 후 학교 앞 피아노 학원. 반년쯤 다녔을 때 아이가 학원에 가기를 거부했다. 피아노 학원에 사람이 너무 많고 시끄럽고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입학 당시 학교 앞 피아노 학원이 두 곳 있었는데 조금 더 규모가 크고 아이들이 많은 곳으로 등록했었다. 제 와서 떠올려보니 아이의 조용한 성향 그래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아이와 나의 성향이 닮은 것은 장단점이 있겠지만 도움이 되는 편이 크다. 은 경우 이미 흡사한 마음상태를 겪어본 터라 ' 그럴까' 보다 '그래, 이런 마음이겠지' 하고 대번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이런 여린 마음을 우리 엄마에게 잘 표현하지 못했다. 내 아이는 그의 세심함과 예민함을 엄마에게 잘도 얘기하며 자라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니 나는 아이가 원하고 표현하는 것만큼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선에서 들어주려는 쪽이다.


규모가 작은 학원으로 옮겨줄까 하다가, 개인 레슨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지역 카페를 검색하고 글을 남기며 개인레슨 선생님을 수소문했다. 엄마들 카페에서 정보를 받은 번호로 연락을 했고, 감사하게도 실패의 경험 없이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이십 년이 넘는 레슨 경험과 따뜻한 성정으로 아이를 잘 이끌어주셨다. 아이도 선생님을 무척 좋아하고 따랐다. 직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도 자신의 공부와 연주를 게을리하지 않는 점도 내게 좋은 영감이 되고 자극을 주는 분이었다. 작년 가을 내가 근 삼십 년 만에 피아노를 다시 치며 나의 스승님으로도 받들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모르는 이의 글을 지나치지 않고 친히 쪽지를 보내 선생님을 소개해 준 어느 천사 같은 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새삼, 세상을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분으로 인해 글 한 줄도 쓰게 되었으니 이 참에 뒤늦게나마 감사의 답장을 보내야겠다.)





4학년이던 작년부터 아이에게 사춘기가 당도했음을 느꼈다. 내가 알던 내 딸 맞아? 하는 순간의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그때부터였다. 피아노 연습을 게을리하기 시작한 것이. 5학년이 된 올해 들어서는 레슨 시간조차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연명하고 있음을 느꼈다.




학원과 개인레슨의 차이와 장단점은 확연하다.

학원은 일단 매일 가며 선생님이 여러 아이(학생)들을 돌아며 봐준다. 인 레슨은 말 그대로 개인적으로, 즉 일대일로 하는 수업이다. 학원에서의 레슨 시간이 매일 십여 분씩이라고 치면 개인 레슨은 매일의 십여 분을 합친 한 시간을 하루에 집중적으로 뽝 수업하는 것이다. 총시간은 같지만 밀도가 다르다. 끊기지 않고 한 시간을 수업에 몰입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에게나 배우는 사람에게나 매우 효율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성인이나 최소 중학생 이상은 되어야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몇 해의 경험 끝에야 깨달았지만.


학원이든 개인레슨이든 상관없이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연습이다. 어디 피아노뿐이랴. 공부고, 운동이고, 다른 악기고, 마찬가지다. 수업을 듣고 배우는 시간보다 어쩌면 혼자 끙끙거리며 파헤치고 궁리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며, 그 시간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반대로 생각하면, 불공평한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버벅대고 안 되던 부분이 끊임없는 반복 끝에 마침내 해소되면 성취감 말 못한다. 이렇게 일단 연주가 '가능하게' 만들어놓는 게 필수다. 이건 선생님대신할 수 없다. 연주가 가능할 때에야 비로소, 챔기름 한 방울 똑 떨어뜨려 요리의 완성도를 높이듯 레슨 화룡정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연습 시간은 고독하다. 외롭고 고통스럽다. 많은 나이에 시작했거나 나처럼 '복귀'한 성인 취미생들이야, 스스로 원해서 이 짓, 아니 이 신나는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지(공짜로 받은 것보다 '내돈내산'이 더 귀하지 않나.) 뭣도 모르고 피아노 앞에 (끌려와) 앉아 있는 아이들은 여간해서 그 재미를 느낄 수 없으리라 짐작한다. 얼마나 지루할까. 밖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나 역시 어릴 때 노느라 땡땡이치고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이 적잖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더더욱 아이들이 학원으로 가는 방법이 효율적인 이유이다.


학원에서는 일부 시간 이론 공부에 할애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통상 독방에서 혼자 연습한다. 같은 시간에 학원에 가고, 일단 가면 '어쩔 수 없이'이기도 하고 '당연히'이기도 하게 연습하며 매일을 채워나간다. 자동적으로 좋은 루틴이 형성될 뿐 아니라, 그 시간들이 쌓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실력이 오르는 건 당연하다. '하면 좋아진다'는 것은 진리다.







주 1회 레슨을 하고 나머지 날들을 혼자 스스로 연습하기를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욕심임은, 나도 서서히 깨닫게 된 바였다. 몰랐다. 시작할 때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은 다 '해주는' '어린이'였으니까. 선생님이 연습 수첩에 내준 숙제대로 성실하게 연습하는 그때의 아이를 나는 칭찬하는 한편 당연히 여기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계속해서 3년 전의 아이일 수 없다. 아이는, 저도 왜 그런지 모르는 채로 마음과 몸이 변하며 자라고 있다. 오늘내일 다르고, 아까와 지금이 다르며,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서 왔다 갔다 들쭉날쭉한 날들을 보내며 커가고 있다. 그런 아이가 어른도 하기 힘든 '스스로' 심지어 '꾸준히' 무얼 한다는 것이 (싫고 좋고를 떠나)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나는 새삼 알아갔다.



처음은 아니었다. 학원을 권한 적이 두어 번 있었다.

"연습을 하지 않고 레슨 시간에 연습하다시피 하는 것은 안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그때마다 아이는 오늘부터 연습을 하겠노라 다짐을 했고, 나도 못 이기는 척 넘어가고 말았었다. 이제 5학년도 반년이 지났다. 더 이상 발전 없이 이도저도 아닌 상태를 이어갈 수 없다. 피아노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기에 아예 놓고 싶지 않았다. 결단을 내려야 해,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말했다.

"피아노가 싫은 것은 아니에요. 연습하러 가는 게 힘들어요."

아이와 함께 학원 상담을 갔다. 다행히 가까이에 마음이 가는 학원이 있어 나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하고 기다렸다. 망설임 끝에 그날 저녁 아이가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갈래요."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아이는 새로운 학원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학원 문 앞에서 엄마에게 전화해 "들어갈게요..." 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신고(!)를 하기도 하고, 작은 선생님이 무섭다고 토로하기도 하고, 새로 진도 나가는 곡을 선생님이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하라고 한다고, 그런데 곡이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레슨 선생님이 그립다며 잠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나는 그저 꼭 안아주었다. 저녁을 먹으며 "피아노... 에휴..." 한숨을 쉬었다. 남편은 시무룩한 딸내미를 딱하게 바라보며 건넸다.

"그리 힘들면 그만 두지 그래." 빈말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이었다.

정이 깊고, 정 떼기를 힘들어하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서 새것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정녕 내 딸이로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또 그저 등을 어루만져주는 것뿐이었다.



선생님으로부터 학원비 문제로 전화가 왔길래 용건이 끝나자마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새로운 곡을 어려워하는 것에 대해. 선생님이 설명하셨다.

"oo이가 계이름을 잘 읽고, 지금까지 해온 기간에 비해 조금 쉬운 곡들을 쳐왔더라고요. 한 번쯤은 도전할 만한 곡을 해서 도약을 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안 해봐서 힘들 수 있지만, 잘할 거니까 도닥여주세요~"

선생님 말씀에 구구절절 공감했기에 신뢰감을 느끼며 한결 마음이 놓였다.

 

다음날 아침 먹다 말을 꺼냈다.

"엄마 피아노 선생님이랑 통화했다~"

선생님 말씀을 그대로 전하며 덧붙였다.

"새로 적응하느라 힘들지? 낯설어서. 엄마도 그랬어~. 분명한 건, 곧 익숙해질 거야. 익숙해지면 좋아질 거야."

아이는 얼굴이 삭 풀려 그 어여쁜 얼굴로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레슨 선생님이 '내' 레슨을 위해 방문하셨다. "oo이 오면 주세요~" 간식 선물을 건네며 전 제자의 안부를 물으신다. 과연 아이가 좋아한 선생님의 따스함이다.

누가 그랬더라.

'개인레슨은 오래 하면 서로에게 안 좋다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성장은 더디고 정만 남는다고.'

공감하는 바다. 냉정하게 인지하고 학원으로 전향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쑤비두비루비와~!). 그러나 '정만' 남는다는 말은 조금 정정해야겠다. 정이 남았다.

감사한 일이다.



아이처럼 나도 지금 곡의 새로운 부분을 마주하며 헤매고 있다.

"익숙하지 않아서... 하지만 괜찮아질 거예요."

아침에 아이를 위해 했던 말을, 같은 날 다른 상황에서 이제 나를 위로하며 내뱉는다.

아이와 헤매며 나도, 단단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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