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거실로 나와 커튼을 걷었을 때 저기 저 동쪽 산너머로 해가 떠오르는데, 나 또 느닷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지않겠어? 분명 어젯밤까지도 비가 왔었는데 이런 서프라이즈라니.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개고 있었겠구나, 나는 알아챘어. 이미 푸르러가는 하늘의 윗부분과, 아직 채 물러가지 못한 아래쪽 구름의 경계로 알 수 있었지. 그나마 남아있는 구름마저도 얼마나 곱고 가지런하게 하얗던지!
아이들을 깨우는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붕 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지.
키만 쑥 컸지 잘 때는 아기 얼굴 그대로인 세 아이를 차례로 주무르고 쓰다듬고 꾹꾹 눌러가며 연신 말했어.
"얘들아~ 날씨 엄청 좋아~ 어제는 종일 흐리고 비 오더니~ 하늘 좀 봐봐~ 아주 기가 막힌다니까."
다 같이 아침을 먹고 사마씨와 아이들까지 후루룩 내보내자 마침내 집안이 조용해졌지. 유튜브에서 <ㅇㅇ카페 알바생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설거지와 간단히 정리를 마친 후, 외출 준비를 하고 얼른 밖으로 나왔어. 나오지 않을 수 있겠어? 나오지 않을 방도가 없는 날씨라고. 특히 말이야. '어제와 반전인 오늘'같은 날씨라면, 사람 미친다니까?
미치겠는 마음은 곧 진정되었지만, 여전히 기분 좋았어. 날씨가 뭐길래 이렇게 사람 마음을 들었다놨다 하는 걸까. 참말 얄궂으면서도, 속절없이 이리저리 이끌려가고 마는 나라니. 이런 내가 좀 웃기면서 좋기도 해.
영화관으로 현장체험학습 간다고 신이 나서 나선 딸래미가, 본인만큼이나 해사한 날씨를 만끽하며 갈 생각하니 덩달아 기쁘고, 오늘 좋아하는 축구를 가는 날인 아홉살 아들들이 이 화창함 속에서 이리저리 마음껏 뛸 수 있어 감사하게 돼.
또한 일터에서 요즘 부쩍 힘든 나의 전우가, 근심 걱정 소독해주는 가을 볕으로 오늘은 한결 덜 힘들기를 바래보아.
황금 들녘을 보니 시골 실감
소풍가는 마음으로 차를 끌고 의림지로 향했어.
우리 지역 명소 '의림지'. 호수 같이 근사하게 가꾼 모습이지만, 이래 봬도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 3대 저수지로 무려 역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무슨 부심인지 우리 친구들은 아직도 줄줄 외운다고. 흠. 지금은 안 나오나 몰라? -옛사람-) 명소거든.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무려 12년을 이리로 봄소풍을 왔다니까. 하하하. (뭐, 그 시절만 해도 별다르게 갈 데가 없기도 했던 것 같아. 쩝.) 사정이야 어떻든, 이토록 오랜 시간에 걸쳐, 이토록 많은 추억이 쌓인 장소가 또 있을까 싶어.
하지만 그저 오래, 많이 다닌 이유로 특별한 느낌을 가지는 건 아니지. 내가 의림지, 그중에도 가을 의림지를 특별히 여기게 된 포인트가 있어.
남자들이 평생 얘기해도 부족하다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못지않은, 여자들의 임신 출산과 관련한 이야기야. 다 얘기하려면 몸 좀 풀어야겠지만, 도입부만 건드려 보려 해.
날씨가 이러니 어떡해. 안 할 수도 없잖아. (나머지는 만나서 얘기하자구.)
엄마들은 공감하지 않을까.
둘째 이하보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시간에 대해서는 특히 애틋하다는 거.
첫째를 임신했을 때 나는 차로 한 시간 반 거리의 '도시'로 검진을 다녔어. 그곳에 조산원이 있었거든. '자연 출산'을 원했었어. 전국에서 자연 출산을 할 수 있는 곳을 탐색했더니 열 곳 내외뿐. 그나마도 대부분 서울, 경기나 부산 쪽에 몰려 있더라고. 우리 지역에서는 너무 멀었지. 그래도 가깝다고 찾은 곳이 한 시간 반 거리의 청주였어. 동네 산부인과를 다니다 20주부터 조산원으로 다녔어. 조산원은, 옛날에 산파가 아기를 받듯이 의료행위 없이 말 그대로 자연적인 방식으로 출산을 하는 곳이야. 의사나 병원 주체의 '분만'이 아니라 엄마와 아기가 주체가 되는 '출산'인 거지. 그래서 20주를 넘겼을 때 엄마와 태아가 안정적이어야 조산원에서 출산이 가능해. 만약의 상황을 위해 근방에 연계병원이 있긴 하지만, 위험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조산원에서 아예 받지를 않지. 그렇게 산부인과에서 확인을 받고 조산원으로 전원을 확정하면, 그때부터는 건강하고 안전한 출산을 위해서 엄마의 노력이 더 필요해져. 나의 선택에 따른 책임이랄까. 알다시피 초산의 경우 진통도 길고, 산도도 좁고 잘 열리지 않잖아.
오랜 진통을 겪어내기 위한 체력을 위해 일단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고, 산도의 수축 팽창을 돕기 위해 케겔 운동도 수시로 해줘야 해. 진통부터 아이가 나오는 순간까지 내내 필요한 호흡 연습도 필수고. 케겔 운동과 호흡은 조산원에서 매번 교육을 해. 아, 호흡 교육은 남편도 함께야.
초기에 심했던 입덧 말고는 출산에 별다른 문제없이 임신 기간을 보냈어. 운이 좋았고 감사한 일이지. 다만 검진때마다 아기의 머리 둘레가 평균보다 조금씩 크다는 의사의 말이 마음에 걸리더라고. 아기가 나오다 큰 머리가 걸리면 못 나오고, 끼어있다 산소가 부족해지면 어쩌고... 하는 말을 들었거든. 게다가 원장님은, 엄마의 속골반이 작다며 "오래 걸리겠는데"라며 무서운 예측을 했고 말이야. 임신 말기, 걱정은 때로 악몽으로 나타나기도 했어.
나와 아기를 위해 운동을 하기로 다짐했어.
집에서 의림지까지 걸어 갔어. 편도에 한 시간 정도 걸리더라. 도착해서는 물도 마시고 저수지도 한 바퀴 돌며 잠시 쉰 후, 다시 한 시간을 걸어서 되돌아오는 총 두 시간여의 걷기 루틴을 9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날마다 이어갔지. 배가 잔뜩 부른 임신부가 작은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을 새삼 상상해보고 있어. 찬찬하지만 야무진 걸음의 예비 엄마가 그려져.
희한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아기가 머리만 컸을 뿐 몸은 작았던 덕인지, 운동 덕인지 모르겠네. 막날까지도 살찌거나 붓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몸이 정말이지 가뿟했어.(대신 3년 후 쌍둥이 때는 완전히 달라지는 몸상태에 무척 당황하고 힘들었고.)
그 때의 그 곳 (당시 만든 포토북에서 발췌)
바람이 차지기 시작한 10월, 살짝 땀이 나고 적당히 숨이 찬 상태로 의림지에 도착하거든. 숨을 고르며 바라본 매일의 그 곳 풍경이 나는 잊히지 않아. 가을이 깊어지며 해는 주홍색으로 벌써 넘어가기 시작하고, 뉘엿뉘엿 지는 그 해가 잔잔한 저수지에 아쉬운 듯 비추면, 물이 넓게 번져 반짝거려. 머플러를 꽁꽁 둘러 몸은 춥지 않은데, 귀는 빨갛게 차졌고 얼굴을 상기된 채로 아주아주 오래 풍경을 바라보곤했어.
내 아기를 만날 기대감에 벅찬 때였어. 나 여기 있다고, 엄마랑 같이 있다고, 활발하게 꾸물렁대는 아기와 대화도 많이 나누었지. '아이'라는 존재에 관심이라곤 없던 내게 처음 온 모성애라는 감정이, 무척 낯선데 신기하고 감사했어. 일생에서 겪어 온 수많은 첫 경험 중에 이게 최고여서, 그래서 아직도 특별한가봐.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그게 마지막 여유였거든. 그땐 몰랐지. 하하하.
의림지로는 종종 나들이를 오곤 해. 벚꽃 구경을 하러, 놀이 공원의 기구를타러, 매년 열리는 미술대회에 참가상 타러 등등. 뱃속에서 함께였던 그 아이, 우리 첫째의 손을 잡고 왔고, 몇 년 후부터는 세 아이가 되어 우르르 몰려 다녔지. 매번 오는 이 곳인데도, 특히 10월 무렵의 깊은 가을, 그 중에도 이렇게 투명한 날씨일 때, 그 중에서도 늦은 오후일 때 오게 되면 나는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어져. 그 날들의 공기마저 감도는 느낌이거든.
이러니 돌아버리게 좋지 않을 수 있겠어?
아몰랑. 이럴 수밖에 없는 사연과 추억, 난 고백했어!
가을, '이런' 날씨, 오후. 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날이라면, 감성과잉한 글이더라도 쪼꼼만 봐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