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할 뻔;;
학원 수업 시간은 6시부터 10시이다. 중간에 10분씩 쉬는 시간이 두 번 있는데 그마저도 선생님이 늦게 끝내주면 학생들은 쉬는 시간 없이 거의 4시간을 집중해서 공부를 한다. 그래서 수업 중간에 학생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오늘은 원에 대한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보다 아름답게 그려진 원이 앞에 앉은 학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보다.
"헐! 완전 계란 같아요!"
'원이 계란처럼 찌그러졌단 건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른자요 노른자!"
노른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썰 하나를 풀어준다.(?)
"선생님이 예전에 계란을 하나 깠는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요?!"
"노른자 두 개 나왔어요?!"
"노른자 두 개였으면 말도 안 하지! 무려 노른자가 세 개!"
(고작해야 계란 깐 이야기로 지친 학생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학원 강사다..)
그러다가 계란 한 판을 사지 않아 본지 반년이 다 되어간단 이야기를 하면서 계란을 '생산' 해내는 과정이 얼마나 암탉을 학대하는지, 수평아리들을 어떻게 죽이는지 설명을 해주게 되었다. 이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하다 보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아싸 수업시간 까먹는다 개꿀'
두 번째는 그 어두운 면을 공감하며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다. (물론 속마음은 어떨지 잘 모르겠으나 겉으로 보이는 바로는 그렇다.)
그런데 두 가지의 반응 모두 공통점이 있다. 그 사실을 잘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보통 비청소년(성인이란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비청소년도 성숙하지 못할 수 있고 청소년도 성숙할 수 있다.)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가리가 커서) 대부분의 경우 백래시를 가한다.
채식을 하면 건강에 안 좋다느니, 그러면 모기도 안 죽일 거냐느니..(실지로 본인은 모기도 잘 죽이지 않긴 한다만..)
그런데 이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공감능력과 뇌는 말랑말랑해서일까? 이런 부분들을 꽤나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엊그제는 스스로 문제를 고칠 시간을 줬는데 어떤 한 학생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너 게이냐?"
순간 그 말의 뉘앙스와 의도가 내 귀를 강하게 때렸다. 평소 퀴어 인권에 관심도 조금 있었고, 성소수자 친구들도 몇 있었기 때문에 그 학생에게 조금은 싸늘하게 말했다.
"게이면 어쩔 거고 아니면 어쩔 건데?"
"선생님 게이예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게이가 아닌데~'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이 반 안에도 '그런' 학생들이 있을 수 있고, 학교에서도 그런 반 친구들이 있을 수 있다고 아니, 없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라고.
그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니 학생도 반성하는 듯했다. 그리고 학생은 알겠다며 취존(취향 존중)한다고 이야기했다(게이가 되어버렸다!(?)). 굳이 더 첨언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어떤 성별을 좋아할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취향이 아니라 지향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랬다니 아 그럼 지존하겠다고 하더라.(지존.. 어감이 참 좋다..!)
이렇게 나의 말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정말로 그렇게 설득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선생과 학생이라는 권력관계에서 나오는 압박 때문이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만약 이런 이야기를 내가 아닌 같은 반 친구가 했더라면 과연 듣기나 했을까? 오히려 저x끼 게이라며 더 놀려대지 않았을까.
하지만 권력으로부터 실현되는 정의가 항상 나쁜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법이 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억제력들이 약자를 보호하기도 한다.
내가 비록 도덕이나 윤리를 가르치는 강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와 관계하는 모든 인간 앞에서 이런 나의 소신을 밝히는 것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롭게 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