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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쾌한씨 Jul 19. 2024

반려식물들과 헤어질 수 있을까?

한 달째 1일 1비움을 매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최근에는 냉동실 파먹기를 하고 있다. 오늘 점심에는 벽돌보다 딱딱한 백설기를 쪄서 먹었다. 냉동실 파먹기 다음에는 거실 창가에 있는 반려식물들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었지만 마음먹은 대로 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혼 초에 시어머니가 키우다 주신 행운이부터 엄마가 주신 산세까지 좁은 거실에 화분이 다섯 개나 있다. 지금은 비우려고 마음먹었지만 식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애정을 쏟았던 적이 있다. 남편이 식물 살인마라고 부를 정도로 천성이 게으른 나는 무언가를 책임지고 키우는 일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운이(행운목)는 우리 집에 올 때부터 키가 컸지만 지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키가 더 커져 남편 키와 비슷해졌다. 사람보다 키 큰 나무를 집에 두면 풍수적으로 좋지 않다고 듣기도 했고 잎이 너무 무성해져서 관리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남편에게 우리보다 더 잘 키울 수 있는 분에게 보내자고 했다. 남편은 나보다 정이 더 많은 사람이라 사무실 이전할 때 데리고 가겠다고 해서 행운이는 우리 집에 남게 되었다.


몬스(몬스테라)는 집들이 선물로 만나게 되었다. 몬스테라는 인테리어 하면 떠오르는 대표 식물이라 키워 보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하얀색 플라스틱 화분을 주문해 분갈이를 하며 애정을 듬뿍 주었다. 몬스테라 화분 하나로 우리 집이 온라인 집들이에서 보던 감성 가득한 집으로 변신했다. 애정을 쏟은 만큼 쑥쑥 자라던 몬스는 갑자기 사진에서 보았던 모습과 달리 잎이 사방으로 뻗더니 노랗게, 검게 말라갔다. 저대로 그냥 두었다가는 남편에게 식물 살인마라는 말을 또 들을 것 같았다.


'노인과 부녀자 등 21명을 연쇄 살인한 혐의로...' 뉴스나 신문에서 나오는 연쇄 살인마처럼 다육이, 몬스테라 등 5개의 식물을 죽인 식물 살인마라고 놀릴 것이다.


'몬스를 살려야 한다!'


노랗게, 검게 자란 잎들을 과감하게 잘랐더니 한 줄기만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한 줄기를 물로 옮겼다. 물꽂이로 키운 줄기에서 뿌리가 내려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몇 달이 지나자 줄기에서 연두색 새순이 삐죽 올라왔다. 그 감동은, 그러니까 그 신비로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첫째 새순이 자라 둘째 새순이, 둘째 새순이 자라 셋째 새순이... 지금 글을 쓰려고 세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새순이 돋을 때마다 '예쁘다, 예쁘다'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덟 잎이나 자라 있었다. 여덟 잎이나 자란지도 모를 만큼 몬스에게도 소홀했다. 중등부 시험 끝나면 몬스는 전처럼 검게 자란 잎들은 잘라내고 작은 화분으로 이사를 가야겠다.


그다음 고무(고무나무)는 키가 너무 커 목대를 반으로 싹둑 잘라 엄마에게 드렸다. 식물 키우기 고수인 엄마의 고무나무는 곁가지가 생겨 가지마다 잎이 자라 외목대인 고무보다 더 멋있어져 살짝 탐났지만 우리 거실에는 앙증미를 뽐내고 있는 고무가 더 잘 어울려 남기기로 결정했다.


산세(산세베리아)는 엄마가 집에서 키우던 산세베리아의 뿌리줄기에서 나오는 잎을 툭 떼어 줘서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키 작은 세잎만 빼꼼 내밀고 있어 잔망스러운 매력을 발산했지만 뾰족한 잎이 콤플렉스인 산세는 지금은 열잎이 넘게 자라 좁은 화분에서 넓은 화분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처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세 잎만 떼어 분갈이를 해서 키우고 나머지는 맘카페나 당근마켓에 드림을 해야겠다.


필름이(스파티필름)는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을 하고 있다. 하얀색 꽃이 시들어 보기 흉해 꽃대를 잘랐더니 그다음 해부터는 꽃이 자라지 않는다. 꽃은 자라지 않았지만 잎이 무성하게 자라 포기 나누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잎이 갈색으로 변한 포기들은 버리고 남은 포기들을 나눠서 분갈이와 물꽂이를 했다. 분갈이를 한 필름이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생명력이 강해 새순이 자라고 있지만 건강하지 않다. 죽은 식물도 살려내는 식물 명의 엄마에게 보내야겠다.


계획한 대로 반려식물들을 정리하면 살 빼서 입는다고 몇 년 동안 버리지 못했던 옷들과 이별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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