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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Jan 18. 2024

안양천의 겨울

  


  예전에는 집에 있는 게 좋아 산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기서 예전이라 함은 스무 살 전후 시기를 말한다. 하지만 30대를 지나 최근에는 산책을 자주 한다. 집 근처에 있는 안양천 길에 자주 간다.


 하천 길의 첫인상은 오염된 폐수가 흘러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 자욱함이 남아 있는 곳이라 사람도 드물었다. 하지만 몇 년에 걸친 하천 복원 사업을 하면서 자연 생물들도 복귀했다. 물이 깨끗해지니 수많은 물고기들과 자라, 남생이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먹이들(물고기들)이 많아지니 저절로 새들의 개체 수도 많아졌다. 겨울이 되면 여러 철새들이 이곳에 들렀다 놀다 가곤 한다.


  그런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에는 하천 길은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져 걸을 때나 달리기를 할 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고기에게 빵을 주는 사람, 억새 혹은 새들을 서진에 담는 사람들 그리고 하천 근처에서 개와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달릴 때는 잘 몰랐지만 걸을 때는 지나치는 사람의 수만큼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우연히도 걷는 속도 같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같이 가는 이들을 만난다. (보통은 내 걸음걸이가 느리기 때문에 다들 앞서가지만)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새롭게 변한다. 자식이 해준 선물 자랑부터, 회사 그리고 친구들 이야기까지 참 다양하고 다채롭다. 그중 부모 자식 간에 같이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아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였다. 새로운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식과 부모 간의 이견이 있었다. 이 남자의 결혼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되었다. 그 뒤로 노부부가 손을 맞잡고 아장아장 걷는다. 그 둘의 뒷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도 저런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또 어떤 날은 이야기에는 관심이 끄고, 근처 자연에게 눈을 돌린다. 물속에는 내 허벅지보다 두꺼운 물고기들이 많았다. 무얼 먹고 저렇게 큰 건지 보는 내내 궁금했다. 새들도 간간이 보이는데 어딜 가나 비둘기는 겁이 없다. 가까이 가도 여느 새처럼 달아나지 않는다. 특히 겨울이 되면 황새인지 두루미 인지 잘 모르지만 암튼 그와 비슷하게 생긴 큰 새들을 자주 볼 수 있어 좋다.

 

  한 무리가 떼를 지어 와서 한동안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더니, 봄이 슬그머니 오려는 찰나  홀연히 사라진다. 올 때도 말없이 와서 갈 때도 무정하게 떠나 버린다. 새들은 다 아는 그때를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디에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새 과학자들은 알겠지만) 우리네 인생처럼 그저 어디서나 잘 지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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