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因緣

Vol.5 - 통보

by 민감성




시간은 흘러 9월이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대학에 도전하기 위해 하던 일을 마치고 수험생 모드로 들어갔다. EBS 교재를 사서 그것만 열심히 공부했다. 평소에 공부를 안해서 그런지 공부하는 습관을 가져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엉덩이가 들썩들썩 하였다.


주말에 그녀가 일을 안 하는 날만 만났다. 한 달에 많으면 두 번 정도였다. 만날 때마다 같이 밥을 먹고, 하천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하고, 의자가 보이면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그냥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동매는 나를 만날 때마다 내가 선물해 준 향수를 뿌리고 나왔다. 풋풋하고 상큼한 향이라 동매에게 잘 어울렸다. 나는 그녀가 선물한 핸드폰 고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수능을 얼마 남기지 않은 10월의 중순쯤이었다. 주말도 아닌데 동매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일이 생겨 중국에 가야 한다고 말이다. 그날 저녁 급하게 만났다.


“동매야 무슨 일이야? 중국에 가다니?”


“엄마가 아파서 중국에 가, 엄마가 병원에 있데”


이 말을 하기가 무섭게 동매는 내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언제나 밝던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내 앞에서 서럽게 우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괜찮을 거라는 생각해주는 것 같으면서도 달리 어쩔 수가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 말밖에 말이다.


며칠 뒤 동매는 다시 돌아올 거란 말과 함께 중국으로 떠났다. 동매가 한국을 떠나고 나는 다시 수능을 위해 공부를 했다. 그리고 수능을 치렀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던 그녀의 소식은 12월이 지나가도록 들리지 않았다. 가끔씩 중국인 숙소에 찾아가 그녀에 대해서 물어봤지만 그들도 그녀의 사정에 대해선 잘 모르는 눈치였다.


원서를 넣고 소식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른 소식 또한 기다렸다. 합격 소식은 금방 나왔다. 1차로 넣은 대학에 합격한 것이다. 이제 나머지 하나를 기다렸다. 2월이 되어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대학 O.T 도 다녀오고 대학 생활이 시작할 때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너무 반가웠다. 오랜 기다림 끝에 소식을 받게 되니 어쩔 줄을 몰랐다. 얼른 그녀를 만나기 위해 숙소로 찾아갔다.


몇 개월 만에 보는 그녀는 역시 해맑은 미소를 가지고 있어줬다. 나는 먼저 그녀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중국에서 가져온 중국차와 과자를 선물로 주었다.


“어머님은 어떠셔?”


“응 다행히 수술 잘 됐어”


“다행이네”


“성일 이거 중국에서 가져온 선물 차랑 과자야”


“오 고마워”


“과자는 지금 먹어봐? 맛있을 거야”


“응 알았어”


나는 포장을 뜯고 그녀 앞에서 먹었다. 굉장히 맛있었다.


“이야 이거 정말 맛있는데”


“다행이네 그리고 차는 집에서 어머니에게 내게 드리는 선물이야”


“이야 이거 우리 엄마가 좋아하겠다. 고마워 엄마 거까지 챙겨줘서”


“어머니가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뒤이은 그녀의 표정과 말이 날 가슴 아프게 했다. 그녀는 잠시 밝은 미소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바뀌더니 내게 중요한 말을 건넸다.


“성일 나 이제 6개월만 일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아 계약 때문에 그런 거지?”


“아니 계약은 연장할 수 있는데 나는 못 할 것 같아”


“왜 여기 일이 힘들어서 그래?”


“아니 사실은…”


“뭐 조금 중요한 이야기야?”


“응.. 나 사실은 다음에 중국에 가면 결혼해야 해”


“뭐 결혼 ??”


“이번에 어머니가 아프셔서 어머니는 내가 큰 딸이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길 바라서 중국에서 남자를 소개받았어. 그래서 여기 일을 마치고 가면 그 사람과 결혼할 것 같아.”


“뭐 다시 한번 말해줄래? 잘 못 알아 들었어”


“나 중국에 가면 소개받은 사람과 결혼해”


“정말??”


“응..”


이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알지 못하는 배신감을 느꼈다. 나랑 만나고 사귀고 있는 거 아니었나 싶었다가도, 나도 결혼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니 그리고 만난 것도 아주 잠시뿐이었으니 할 말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동매도 그 남자가 마음에 들어?”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성실하고 좋은 사람 같아. 엄마가 아플 때 그사람이 곁에서 많이 도와줬어"


여기서 “그럼 나는??” 이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동매에게는 나보다 그사람이 더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심란한 마음은 다시 한번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랜만에 만나 좋을 줄만 알았던 만남은 미묘한 감정만을 남겼다.


“그래 잘 됐네 좋은 사람이라니 그래 동매가 행복했으면 됐지”


“고마워”


“나는 대학에 합격했어 그래서 다음 달부터 학교에 다녀”


“어 축하해!! 안 그래도 궁금했었는데..”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다시 밝은 미소로 돌아왔다.


서로의 궁금증이 해소되자 얼마 안가 짧은 만남은 끝이 났다. 돌아오는 버스안 아쉬운 마음을 달랠 곳이 없었다. 그저 이렇게 스쳐가는 인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인생에 한 번쯤은 도박을 해 볼 만도 하지만 그때는 각자의 사정과 현실이라는 벽에 막혀 할수 있는 것들이 많이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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