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 OVER
며칠 뒤 그는 내가 출근하자마자 나를 기다렸다는 듯 나를 보자마자 내게 찾아왔다.
어제 내가 일러준 대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는데 그녀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슨 대화를 했냐고 물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대화 방식에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 우선 그는 말이 과할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대화를 주고받는즉 “turn over”라는 것이 있는데, 쉽게 말해 내가 한번 말하면 상대방도 한번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대화의 기본인 것을 그는 몰랐다. 다시 말해 그는 눈치가 조금 모자랐다.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았던 것이다. 나는 손바닥으로 내 이마를 탁! 치며 속으로 “아이고 이 미련한 사람아”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내가 그녀와 대화를 하라고 했더니 주구장창 본인 얘기만 하고 오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난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인데요??”
“아이고 답답한 사람아 그녀에 대해서 물어봐야죠? 나는 당신이 궁금합니다. 당신의 취미가 뭔가요?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혹시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류의 영화 좋아해요? 전 나홍진 감독의 영화 좋아하는데?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상대방에 점진적으로 상대화 대화를 맞추어 나가야죠??”
“아 제가 잘못한 거군요..”
“아니 뭐 잘했다, 잘못했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당신의 대화 방식에 문제는 있는 것 같네요. 사람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아 이 사람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본인 이야기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반대로 하고 왔으니, 대화의 시작은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라고 생각하게 되죠.”
“네 알겠습니다. 전 조급하다 보니 이야기가 한시라도 끊기면 분위기가 어색할 것 같아서 제 이야기만 한 것 같네요. 고마워요 성일 다음에는 성일이 말한 대로 해 볼게요"
그는 알아들었다는 듯 약과 하나를 건네주고는 근무지로 돌아갔다. 나는 여유 있게 출근을 한터라 출근 전 확인해야 할 것들을 확인하고 준비 후 근무지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연애가 잘 될까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내가 하고 있는 건 아닐까와 내가 괜한 참견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다시 그를 만났다.
그가 그녀를 좋아하기 전에는 그와 만나면 일과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그 후론 줄곤 그녀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와 그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성일 안녕하세요. 저 실은 어제 퇴근길에 우연히 지혜 씨와 만났거든요. 그래서 카페에 가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성일이 알려준 대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집중하면서요.”
“아 그래요. 어째 표정을 보아하니 좋은 대화를 나눈 것 같은데 맞나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대화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기 전 그녀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줬고 또 제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가 많이 웃어주더라고요. 이 정도면 좋은 반응이겠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기에서 “그녀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줬고”에 귀가 굉장히 거슬렸다. 그가 다른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내 머릿속에서 위의 말이 계속 되새겨졌다. 아니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줘야만 했다는 것인데, 대체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까? 아니면 진짜 연애나 사람들과의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잠깐만! 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많이 들어줬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어제 성일이 그랬잖아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아니 그다음에 자기 이야기를 했다고 했는데 혹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줘야만 했다는 건가요?”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당신은 지혜 씨를 좋아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그녀에게 나를 알려주고 싶어서 내 이야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잘못한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닌데 순서의 앞뒤가 바뀐 것 같아서요 혹시 그녀가 당신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나요? 그래서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당신의 이야기를 한 건가요 아님 그녀의 말이 끝나자 당신의 이야기를 한 건가요?”
“음.. 후자가 맞는 것 같네요”
“음.. 역시 그렇군요. 그러면 여기서 제가 당신에게 하나 알려줘야 할 것 같네요. 대화에는 “turn over”라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 차례가 있으면 다음에는 저에게 그 차례가 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우리의 대화와 같이 당신이 말하고 당신의 말이 끝나면 내가 말을 합니다. 이게 바로 turn over 이지요.!”
“아.. 세상에 그런 것이 있나요. 그냥 막 대화를 하면 안 되는 건가요?”
“하지만 좋은 대화에는 순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 할 말만 하고 끝이 나면 좋은 대화라 할 수 없겠죠? 대화라는 것이 상대방이 들어주니 내가 말할 수 있듯이, 내가 말을 했으면 상대방의 말도 들어줘야 합니다. 조금 제 말이 이해되셨나요?”
“역시 성일은 아는 것이 많은 것 같네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역시 연륜이 있으시다 보니 저보다 훨씬 경험도 많으신 것 같네요."
“아닙니다. 살다 보면 저절로 다 생겨납니다. 그뿐입니다.”
그는 돌아서면서 나의 말에 신경이 쓰였는지 자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돌아갔다. 그 후론 그를 만날 때마다 연애 이야기뿐이었다. 처음에는 신경을 써서 들어줬지만, 들을수록 별 진전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줘야 하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며칠 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쯤 되면 지혜 씨에게 식사를 권유해 보면 어때요?”
“식사요?”
“네네 사람은 자고로 같이 밥을 먹으면서 더 친해지니깐요”
“뭘 먹으면 좋을까요?”
“저번에 먹었던 미슐랭 받은 곳 있잖아요. 거기 분위기도 괜찮던데 그곳에 한번 가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그 돈가스집이 있었군. 고마워요 성일”
내게 묻는 나는 그가 이상했다. 내게는 알아서 좋은 음식을 파는 곳을 잘만 데려가더니 정작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과 식사를 할 곳을 내게 물으니 말이다. 이때부터 그와 대화를 나눌 때면 나와 이야기하면 아무 문제 없는데라는 조금 아쉬움이란 감정이 생겼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