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가을에게 묻다.
제목은 나름 그럴싸하다. 여기서 그럴싸하다는 말은 좀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 자 이제 문제는 제목처럼 내용도 그럴싸해야 되는데 내용이 제목의 그럴싸함을 받쳐주지 못할 것 같아 고민이 된다. 가을은 내게 이별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사실 나는 날씨보다 냄새로 계절에 변화를 알아챈다. 특히 다른 계절보다 가을에는 가을 특유의 냄새가 있다. 비 비린내로 비가 내리는 것을 알듯, 바람에 실려온 가을내로 가을이 왔음을 직감한다.
가을이 오면 가을맞이를 한다. 옷장에 있던 짧은 것들은 어느새 긴 것들로 탈바꿈한다. 옷장 깊숙이 특정한 날에 입으려고 사놓았던 잊고 있던 옷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 유행에 한참 지나있고 더 이상 내 몸에 맞지 않는 옷들을 정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는 왜 되지도 않는 멋을 부려서까지 괴상한 옷을 샀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옛 것들과 안녕한다. 그리고 두꺼운 이불 대신 얇은 이불 두 개로 겨울이 오기 전까지 버틴다.
가을은 다른 계절과 달리 사색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걷고만 있어도 많은 고민이 해결되고,, 조금 더 걷다보면 새로운 것들이 가슴에서 머리로 마구마구 넘쳐 흐른다. 그래서 고민이 있을 때와 글이 멈추었을 때 항상 가을 빛과 함께 가을을 걷는 연습을 한다. 또한 가을은 러너의 계절이다. 나도 한때는 가을 빛과 사람들의 그림자들 사이를 달리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오랜 부상으로 배가 나와 걷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만, 다음 가을이 만날 때쯤이면 나도 러너가 되어 지금의 뱃살과는 즐거운 안녕할 것이다.
모든 것의 시간이 변해가듯 가을의 시간도 변해갔다. 어릴 때는 가을이 이렇게 좋은 계절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얼마나 우리 곁에 머물다 갈 수 있는지 가을에게 묻고 싶다. 가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을의 멋들어짐과 물들어짐을 오랫동안 즐기고 싶은데, 점점 짧아져 가는 가을이 못내 아쉽다. 이게 다 성질 급한 나와 닮은 겨울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을은 고요히 내리는 첫눈과 함께 한밤중 겨울에 그 자리를 내어준다. 나는 아직 보내지 못한 편지로 가을에게 작별을 고한다. 영화 [파인딩 포레스트]에서는 가을을 ‘신념이 익어가는 계절’이라 표현했다. 아마 이보다 멋진 표현은 없을 것이다.
붉게 물든 당신을 만났습니다.
잠시 사랑에 빠져 가슴이 설레었다.
당신에게 묻습니다.
이번엔 내 가슴에 얼마나 머물다 가실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