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과 손의 세계
젠장!! (욕부터 해서 미안하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당했다. 아니 모르고 봤다.
오늘 쉬는 날이기도 하고, 비도 오고, 오후에 딱히 할 일도 없어 영화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최신 나온 영화인 듯해서 봤다. 예약한 헤어숍을 다녀오고 2시에 매불쇼가 하니 영화 한 편 가볍게 즐기고, 매불쇼 보면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나를 아프게 했다. 훌륭한 영화인데 보통의 영화인줄 알고 선택한 내 잘못이었다.
영화는 청각 장애를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다. 그저 소소하면서 가족들의 정을 그러낸 영화인 줄 알았다. 게다가 영화가 중반부쯤 돼서야 다 자란 그 주인공이 최근 개봉한 국보의 주인공과 같은 인물이란 것을 알았다.
초반부터 수어로 대화를 시작한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어 영화가 더 끌렸다. 한국수어와 일본수어는 비슷한 게 많았다. 수어를 배우기 전 일본유학을 다녀온 나로서는 ‘저 일본어는 저런 수어로 하는구나’라고 쉽게 파악되었다. 실제로 일본에서 일본인과 수어로 대화를 한 적도 있었다. 중간에 성인이 된 주인공이 좋은 여성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후반부에 나를 울렸다. 젠장.. 더 이상 울지 않기로 했는데....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너희 부모는 왜 그려냐’는 놀림을 받으며 자랐다. 그 위에, 평범하지 못한 부모 때문에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 환경을 미워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에게 의지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의 부모는 자신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내가 같은 환경이었더라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가난한 우리 집이 싫어 진짜 부모를 만나러 가겠다고 집을 나선 적도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멈췄지만 말이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진짜 부자 부모가 날 데리러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잠들었다.(어릴 때만 그랬다. 커서는 지금의 어머님께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암튼 혹시라도 연말에 어디 좋은 영화 볼만한 거 없나 싶으신 분들에게 이 영화를 아주 아주 강력하게 추천한다. 슬프다고 미리 스포를 한 격이지만, 내용은 모를테니 암튼, 후반에 눈물 흘릴 준비를 하시고 보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어머니 역할의 오시다리 아키코 배우가 수어를 너무 잘하길래 놀랐다. 이 배우가 피나는 노력을 했구나 했지만, 알아보니 그분은 일본 최초 청각 장애인 배우라고 한다. 나이는 나보다 열살 더 많다는 것에 또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