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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Jan 11. 2023

발길따라

발길이 닿는 곳까지



 나도 한때는 누구 못지않게 잘 걸어 다녔던 놈이다. 오죽했으면 하루 종일 산에서 놀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와 부모님에게 혼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산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도 내 다리는 힘 빠짐없이 멀쩡했다. 세월이 지나 30대 후반이 된 어느 날 동생이 옥스 팜이라는 장거리 걷기 대회를 나간다는 얘길 들었다. 


  연습 겸해서 집 근처 하천 길을 같이 걷기로 했다. 예전에는 무작정 걷고 싶은 만큼 걷다가, 이 정도쯤 이면 됐다 싶어 되돌아 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10km를 반환점으로 정해놓고 GPS까지 확인해 가면서 거의 왕복 20km를 걷다가 왔다. 하지만 이게 웬걸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뻗어버렸다. 군대에서 행군을 했을 때도 다른 선임과 후임들의 자질구레 한 것들을 다 도와주고, 챙겨주고 나서 잠을 청했던 나였는데, 고작 20km 정도 걷고선 그날은 바로 K.O 되었다. 분명 나이 탓도 무시 못 할 거고, 동생과 달리 내게는 목표의식도 없었다는 핑계가 있었다.


 동생과 걷을 때 옆에서 같이 가볍게 걷고자 했던 것이 나의 나약한 30대 후반의 체력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사건이 되었다. 그 이후로 동생은 무사히 100km 걸어서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4명이서 한 조가 되어서 걷는 행사인데 의외로 중간에 포기하는 팀과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동생이 참 대견스러웠다.


  학창 시절부터 공부보다는 체육과 미술에 관심과 소질을 보였던 터라 그나마 믿을 것이 이 몸뚱이 하나였는데, 이제는 그마저 믿을게 못 되어 버렸다. 그 후로 저질 같은 몸을 단련하고자 달리기 및 축구를 꾸준히 해오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란 책을 알고 읽고서 나도 한번 마라톤에 나가고 싶다는 목표를 만들었다. 


 축구로 다져진 기초체력이 있던 터라 달리기 연습만 꾸준히 해오면 별 무리 없이 마라톤 풀코스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뛰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풀코스의 거리는 내겐 아직 버거웠다. 달리기도 나에게 맞는 계획을 세우고 트레이닝과 회복을 적절히 가져가며 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것 없이 매번 내가 달리고 싶은 만큼 달렸고, 같은 거리를 달렸다면 어제보다 빠른 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그러다 한 번은 평소에 10km 정도 내외를 달려왔던 나였지만, 미쳤다 생각하고 20km를 달려본 것이 있다. 물론 어쩌다 한 번은 약간 무리를 해서 달려보는 것도 좋은데, 나는 20km를 한번 달리고 보니 그때부터 내 목표는 항상 20km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급격하게 늘린 거리를 달린 결과, 지칠 줄 몰랐던 내 심장과는 달리 내 다리는 결국 탈이 나고야 말았다. 


  병명은 족저 근막염. 발바닥 뒤꿈치 쪽 근막에 염증이 생겨 발을 바닥에 디딜 때마다 통증을 느끼는 염증성 질환이다. 이런 병이 내게 생길 줄이야. 처음 며칠 느꼈던 통증을 가벼이 여기고, 무리하게 무리한 거리를 달렸던 것이 그 첫 번째 원인이었다. 그렇게 한 달가량 통원치료를 받으며 회복을 하였다. 다시 한번 가볍게 3~4km 정도 달려보니 통증이 없었다. 그래서 다 나은 줄 알고 다시금 페이스를 올려서 달린 것이 두 번째 원인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여기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세 달째 아주 엄격하게 쉬고 있다. 개 산책을 제외하곤 어지간해서는 밖을 잘나가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잘 걷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시간이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몸이 정말 근질근질하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해서 동생과 걷기 연습을 했던 하천 길로 종종 가볍게 20~30분 정도 걷고 온다.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나보다 빨라 나를 앞서 걷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도 뒤처진다. 그 정도로 천천히 걸으며 천천히 생각한다. 또 중간중간 만나는 열심히 달리는 여러 러너들을 볼 때면 


“아~ 나도 달리고 싶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이대로 쭉 발길 닿는 데까지 한번 달려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다 날 앞지르는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내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 어딜 ~ 우리한테도 뒤쳐지는 너는 지금 무리야. 괜히 애쓰지 마” 


 예전에 한 친구가 하루는 하도 심심해서 지하철 끝에서 끝까지 한번 앉아서 가본 적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이내 잠이 들어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눈이 떴지만 아직도 한참을 더 가서야 끝에 다다랐고, 되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보다 덜 힘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이야기는 싱겁게 끝이 났지만 그 친구는 나보다 먼저 발길 따라 전철 따라를 해 본 경험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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