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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Jan 28. 2023

미라클 데이

형제간의 대화


 




  살면서 오늘이 처음인 것 같았다. 동생과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가슴 깊숙이 묵혀두었던 것에 대해 대화를 한 것이 말이다. 동생은 오늘을 <Miracle day> 라 부르기로 했다.


  마음속의 생각을 정리하려고 저녁을 먹고서 하천 길로 홀로 산책을 나섰다. 그리 추운 날씨가 아니라 한가로이 걸을 만해 좋았다. 어느 정도 걷다가 반환점을 돌아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선 기도를 드렸다. 우리 가족의 건강과 나의 앞날을 위해서 빌었다. 기도를 하다가 산책을 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처럼 문득 동생의 고마움에 대해서 생각났다. 그래서 산책길 한가운데 서서 다음과 같은 카톡을 보냈다.


네가 내 동생 이여서 참 고맙다 진심이야.


라고 말이다. 진심을 보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지만 카톡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동생으로부터 영상 통화가 왔다. 동생은 통화가 시작되자마자 내가 많이 바뀐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몇 가지 지금까지 나에게 가지고 있던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하나, 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동생이 가지고 있던 나에게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다 내가 잘못 한 부분이라, 솔직하게 인정하고 늦게나마 동생에게 했던 실수를 사과하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과를 하는 동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내가 잘못한 것이고,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당시 미안하다는 말 한번 제대로 못했던 많은 것들이 마음 한켠에 응어리로 맺혀 자리 잡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만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동생과 오늘 대화로 동생도 마음 한켠에 가지고 지냈다는 사실에 미안하고 더 미안했다. 


  동생이 나보다 더 어른스럽고 생각이 깊다. 하나 확실한 건 나도 내 동생이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말로는 오늘에서야 표현을 했지만 말이다. 언제까지나 나보다 어린 동생으로만 생각했던 내게는 이제 나보다 더 성숙한 동생이 내 앞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심리적으로 말하자면 내 앞의 동생이 거대하고 나보다 큰 사나이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전 일본 유학시절 이 느낌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려본 적이 있었다. 동생을 거대한 프랑켄슈타인으로 표현했고, 그 앞에 나는 안절부절못하는 작은 박사로 표현했었다. 다들 동생과 나란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그림이 재미있다는 말과 함께 웃음으로 감상을 표현해 줬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란 인간의 작음을 표현한 작품이라 웃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다 “너도 이제 40세 이구나”라고 말하는 순간 다시 내 머리통에 큰 뇌리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동생은 예전 그대로인 줄 알았다. 스무 살의 동생, 서른 살의 동생으로만 내 머리와 가슴에 남아있을 줄 알았다. 그런 동생으로 남아있던 동생이 어느새 40대의 아저씨가 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항상 내 동생으로 남아있길 바랐는지도.


  오늘은 많은 것을 토해내고, 이해하고 받아들인 날이다. 평소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써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되도록 피하고 멀리했다면, 오늘은 진심 대 진심으로 서로의 것을 여과 없이 건드리고, 보여준 날이고 더 알게 된 날이다. 그래서 나도 좋았고, 동생은 한발 더 앞서 오늘을 기념하며 < Miracle day> 라 부르기로 했다. 


  실은 최근에 일어나 집안의 안 좋은 일이 발생해, 나는 고통을 혼자 떠맡아 안으려 했었다. 그것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내게 이와 같은 동생이 있어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게도 동생에게도 오늘은 서로의 응어리를 없애고, 가족의 존재 이유를 알게 해준 미라클 데이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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