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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Mar 22. 2023

글을 읽는다는 것

자신만의 필터



  글을 잘 쓰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다. 다른 이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이고, 그 생각과 닮아가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잘 쓴 글을 읽다 보면 그 글의 생각이 내 글에 담긴다. 글을 읽는 순간 좋은 표현에 감탄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고, 또 모르는 단어를 만나는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글이란 읽고 난 후 깊은 고뇌를 하게 만든 글, 긴 여운을 남기는 글, 그리고 읽는 순간 깨달음 같은 것을 느끼게끔 만드는 글을 말하고, 깨달음의 경우는 대체로 시를 읽고서 많이 느낀다. 소설도 좋고, 에세이는 더 좋고, 시는 더 더 좋다.


  나는 무엇이 내게 글 읽는 것(독서)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예전부터 나는 친구들을 만나면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말하는 쪽에 속한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가끔씩 말이 없어지는 진공의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나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늘 이야깃거리가 필요했고, 책에서 본 과시하기 좋거나 꽤 괜찮은 내용 혹은 인용할 부분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친구들을 만나면 설을 풀었던 것이 그 계기로 보인다. 그렇다. 분명, 동기는 불순했다. 아마도 어렸을 적에는 모자랐기에 그 모자람을 감추기 위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과시와 이야깃거리를 위해 읽은 책에서 얻은 것은 겸손함 이었으니 결과론적으로 잘 된 셈이다. 


  알랑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는 민음사라는 곳에서 발간한 세계문학전집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 도서관이나 문학 쪽에 한자리를 잡고 있는 세계 유명 작가들이 책을 모은 것인데, 세계 유명 작가들의 수많은 글들을 보면서, 죽기 전까지 한번 다 읽어 보리라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예전 한 일본 출판사들의 영업전략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을 우리나라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읽어봤어야 것이라고 생각했던 책에 대한 내 믿음이 무너졌던 순간들이 있었다. 다른 나라에는 있어도 지금처럼 서양문학 위주의 전집은 없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굳게 믿고 있던 믿음이 크면서 무너져 버린 것들 중 하나였다. 말이 나온 김에 어렸을 적 굳게 믿고 있던 믿음 중에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부모님), 부처님은 신이 아니라는 것, 크리스마스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쉬는 공휴일이 아니라는 것, 호주는 정말 12월이 여름이라는 사실 등이 있다. 


  어떠한 사건이 벌어지면, 언제나 못마땅해 하거나 그 반대파들이 생긴다. 그 반대편에 서서 점점 그것이 정말 사실인가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믿음으로 굳어져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우연적으로 발생한 비슷한 상황을 끼리끼리 모아보면 정말 그런 것이 있기라도 한 듯 믿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 가장 그런 것이 많고, 정치뉴스가 그렇게 만든다. 하루 종일 한쪽의 편향된 뉴스만 본다면 정말로 그런 이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주체적인 생각은 없다. 그저 흡수만 할 뿐 반대나 반항 같은 역할을 하는 필터가 없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이의 글을 읽고 또 읽는다. 읽어야만 나만의 필터가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필터로 내 것으로 만들지 아니면 흘려보낼지 결정을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글을 읽는다는 것을 그런 것이다. 받아들이되 받아들일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글을 읽는 줄을 모른다. 나만 그럴 수도 있고, 나와 같을 수도 있고, 나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를 수도 있다. 사람마다 같을 순 없으니 조금 다름은 분명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대신, 꼭 자신의 필터를 거쳤기를 바랄 뿐이다. 현재 당신의 필터는 잘 작동하는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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