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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Mar 30. 2023

이방인

간만에 느끼는 고독함

  


  작년부터 이어져온 발바닥 부상에서 점차 회복되어감에 따라 일을 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의도 쪽에 일을 알아볼 겸 들릴 일이 있어 여의도에 왔다. 볼일이 있어 온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나를 이방인 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온 나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한시 바쁜 걸음들로 다들 정신없이 보였고, 그들의 눈은 다들 핸드폰 아니면 자신들의 길만 응시하는 초점 없는 눈뿐 이었다. 내 깊은 한숨이 멈춘 순간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장면에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간과 동시에 나는 멈춰서 있고,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사람들의 물결이 내 곁을 강물처럼 한없이 양방으로 흘러갔다. 


 사람들의 거대한 물결을 보는 그곳에서의 나는 초라해지고 작아졌다. 그곳에서 감각이 없어진 사람이었다. 내가 나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없는 사람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해가는 그 속에서, 나는 한 치 앞도 움직이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살아가는 이방인과 같았다. 나도 살아 숨 쉬고 싶었다. 바쁘게 숨 쉬며 살아가고 일하는 그들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들에 비하면 그곳에서 나의 모습은 죽은 사람과 같았다. 숨이 딱하니 막히고 어질 어질했다.  이런 게 바로 대인기피증 아니면 공황장애의 초기 증상이라면 왜 사람들이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된다.


  볼일을 잘 마치고, 되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는 내 삶이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나대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해외 이민을 준비하고 공부에 욕심이 있어 해외에서 보내버린 30대의 시절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어쩌면 지금이 진짜 절실하게 인생에 대해서 다시 시작해야 할 시기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내가 공부를 하러 일본에 첫 발을 디뎠을 때도, 뭣 모르고 서양문화를 배우고자 찾아간 호주에 갔을 때도, 아메리카 대륙을 경험하기 위해 간 캐나다에 갔을 때도, 내 전공을 더 공부하기 위해 간 독일에 갔을 때도, 영어점수를 올리기 위해 간 필리핀에 갔을 때도,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대만에 갔을 때도 내 생애 처음 가는 모르는 곳이어서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지만 나는 언제나 이방인이었지만 오늘과 같이 낯선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고작 서울의 한 지역을 간 것뿐인데, 그곳에서 예전처럼 그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었다. 길을 찾는데도, 구글맵이 있어도 헤매었고, 길을 묻고 싶어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이게 다 “도를 아시나요” 탓이겠지만, 바쁜 걸음을 재촉이는 사람들에게 말걸기란 참 어색했다. 분명 그곳에서의 나는 예전과 같이 이방인 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이런 느낌은 꽤나 색다른 감각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를 되돌아 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나 이외에 것에는 무관심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도 주변의 것을 살피고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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