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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Apr 04. 2023

my everyday, my everything

네마리의 개와 나의 이야기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에 개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나서 책상 앞에 앉았다. 보통은 길을 걷다가 혹은 다른 곳에서 미리 얻은 소재로부터 그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오늘은 책상에 앉아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내 주위에 보이는 것을 써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가 내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이다. 


  10년 넘게 개 산책하였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느 정도는 산책에 자동화가 되어 있다. 거의 항상 일정한 시간이 되면 산책을 나가고, 그 시간이 될 무렵이면 나조차 알아서 하던 것을 멈추고 녀석들의 얼굴을 살핀다. 잠을 자고 있는지, 아니면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지 말이다. 이때쯤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뭘 원하는지 굳이 설명 안 해도 될듯싶다. 가끔씩은 설마 하고 있으면 뒤에서 나를 뚫어져라 보는 레이저 눈빛이 무섭다.


  개 산책을 하다 보니 개와 나에게 일정한 규칙 같은 것이 생겼다. 밥은 항상 산책 가기 전에 먹고, 간식은 산책 후 먹는 것 그리고 산책 중에는 웬만한 것은 해도 되지만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다려” 란 말에는 항상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 나와 개들 간의 불문율이다. 


  웃긴 얘기로 세 마리 개중 한 마리가 똥을 싸던 중에 옆에 친구 개가 지나가자 우리 개가 친구개에게 달려드는 바람에 함께 묶여 있는 똥 싸던 강아지가 똥을 싸는 채로 끌려간 적이 있기에 어처구니없어서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기다려 훈련을 아주 제대로 교육했다. 그래서 이제는 웬만해서는 기다려란 말에 그 어떠한 움직임도 하지 않고 잘 기다린다. 그래서 가끔씩 주를 놓친 경우에도 기다려 한마디에 아주 잘 기다린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서인지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통하는 부분도 있다. 우리 집 다른 식구들은 못 알아차려도 나는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금방 알아차린다. 아 지금 간식이 먹고 싶은구나, 지금 산책을 가고 싶구나 아니면 같이 놀아달라고 하는 건지 등등 눈빛만 보고 아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불편한 점은 무조건 나한테만 온다는 것이다. 내가 바삐 무언가를 하고 있어도, 다른 식구들보다는 내게 와서 요구한다. 이놈들도 내가 그 요구를 들어줘서 나한테 오는 것들도 있지만 내가 잘 파악하니 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예로 우리 집 개가 화장실에 소변이나 대변을 하였을 경우 아주 크게 기뻐하면서 간식을 주는데, 이놈들은 다른 식구가 있어도 꼭 내게 와서 그 티를 빡빡 낸다.( 짖거나 중요 부위를 나를 보며 햛는다.)

설마 하고 있지만 어쩌면 아니 거의 정확하게 이놈들에게 나는 호구인 것 같다. 나는 호구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지내다오~!


개 산책을 할 때면 매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 있다.  


“개 세 마리 키우면 힘들지 않아요” 

“개 세 마리가 한집에서 커요, 싸우지 않아요??” 

“개 세 마리를 산책을 어떻게 해요??”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을 때는 꼭 관심도 없는 이들이 그저 말 한마디 붙여보려고 하는 거라 생각하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그저 “괜찮아요, 할만해요”라는 식으로 대충 얼머부리듯 대답을 하곤 했다. 매번 같은 식의 대답을 하는 것도 귀찮고, 매번 같은 식의 질문을 들으니 귀에서 토가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지겹기도 하였다. 실은 이 녀석들은 내가 들여온 개도 아니었다. 누나가 길에서 만나 유기견이 그 계기가 되어서 한 마리에서 네 마리까지 늘어나게 되었고, 그 책임이 어쩌다 보니 내게 전가된 것 같아, 약간의 실증도 내게는 있었다. 


 게다가 한동안 부상당한 발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하루에 아침저녁쯤으로 두 번씩 산책을 나가다 보니, 내 부상 회복이 늦어진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마음의 한편에서는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나의 불만과 불평 같은 것은 2년 전 잘 지내던 내 가장 사랑했던 나니라는 개를 하늘나라로 보내고부터, 이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 내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죽음으로부터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 녀석들에게 그저 살아있는 동안 만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주길 바라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주려 한다. 그리고 지금은 위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이제는  이렇게 그들에게 말한다. 


“이들에게서 받는 내 행복이 더 크기에 나는 힘든 줄 모른다.”


  맞다. 어쩌면 내가 해외에서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약간 방황했던 시기 이 녀석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안 좋은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에 자존감과 무기력해지는 나를 보면서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할뻔했다. 하지만 이 녀석들과 매일 숙제처럼 하는 산책을 하고 챙겨야 할 것이 있었기에 나는 그것들을 매일 해야 하는 의무감이 있었다. 


 나는 세상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지는 몰라도 이 녀석들에게는 내가 세상 그 자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다시금 스스로를 다 잡는 내가 되게 해주었다. 내가 주는 사랑보다 이 녀석들에게 받는 사랑에 더 크고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10년을 함께 했으니 이 녀석들과 만들어온 추억들이 한둘이 아니다. 생각이 날 때 여기에 글로 써보겠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것은 개의 수명은 보통 15년 정도라고 한다. 다들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별을 생각하는 슬픔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더 즐기자 하는 생각으로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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