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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감성 Nov 28. 2023

커피 그리고 약속



 커피를 마시고 싶어지는 아침이 있다. 사실 커피를 정말 마시고 싶어서 라기보다는 커피향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서인데 오늘이 그러했다. 새벽 5시경에 눈이 떴는데, 정신을 차릴 겸 찬물로 샤워를 하고 커피를 내렸다.


 샤워를 마치고 창가 옆 책상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무념무상으로 바깥을 보았다. 커피향을 너머로 비 비린내가 뿜어져 왔다. 밖은 추적추적 내린 비로 서늘함이 짙게 깔린 거리로 보였다. 월요일인 오늘을 이불 속에 시작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어 무얼 할까 다이어리를 폈고, 고심 끝에 아직 읽지 못한 책을 읽기로 하였다. 그동안 읽지 않은 책들이 날 째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은 커피보다는 차를 더 좋아한다. 다만, 차는 오래 두고 마실 수가 없다. 따듯한 처음 맛과 식은 후 뒷맛이 전혀  다르게 때문이다. 식어가면서 그 맛을 점점 잃어가는 것 같다. 누가 보면 커피와 차를 둘 다 마실 줄 모른다고 할 것이다. 부정은 못한다. 나는 그냥 있으니깐 마신다.


 그렇게 피천득의 <수필> 이란 책을 꺼내 들었다. 한참을 읽고 있는데,  같은 국제 학교에서 일했던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에 보자고 했던 전시회를 오늘 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나야 그다지 할 일도 없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약속 하나가 생겼다.


  그렇게 서울숲 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사당역에 도착하고 2호선 환승을 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길이었다. 길을 물어보는 어르신을 만나게 되었다. 어르신은 아프리카에서 40여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예전과는 전혀 다른 한국이라 크게 놀라셨지만, 정작 나는 90세가 넘었다는 이야길 듣고 아직도 너무 건강하신 것에 놀랐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아프리카 여행지 좀 추천해 달라고 하였다. 자신이 살다 온 케냐를 추천해 주셨는데 케냐는 해발고도가 높아 공기 좋고, 날씨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여느 케냐 선수들처럼 마라톤을 즐겼다고 한다. 나도 맞장구치며 우리의 이야기는 마라톤 이야기로 이어갔다. 내년에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고 하니 어느 대회가 될지는 모르지만, 만나면 아는체해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기분 좋은 만남과 약속을 뒤로하고 그는 그의 약속이 있는 곳으로 떠났고, 나는 내 약속이 있는 곳으로 멀어졌다.


 약속한 장소에 먼저 도착한 나는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인스타를 확인하던 중 메시지가 하나 있길래 확인해 보니 호주 가족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호주 아버지 Peter가 돌아가신지 1주기가 되었다는 메시지였다. 작년에 그의 장례식에 찾아뵙지 못하였다. 그래서 올해는 꼭 간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의 아들인 Geordy 와 영상 통화를 한 후 바로 이번 주에 호주에 가기도 약속을 하였다. 그동안 일에 바빠 잊고 지냈다. 내가 호주에 있을 때 그의 집에서 지내며 아무 대가 없이 나를 정말 친 아들처럼 잘 대해주신 분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안쓰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바로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았다. 비록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12월 7일 호주로 떠난다.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올 예정이다. 13년 전에 처음 만난 호주가 설렘의 나라였다면 지금의 호주는 늘 나를 반겨주는 가족이 있어 언제나 고향과도 같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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