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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인 Jun 06. 2023

집에서 논다는 말

지역과 여성 #6

“집에서 놀면서 아이를 맡기는 건...”

얼마 전,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대화하다 문장이 화살처럼 훅 들어왔다. 집에서 논다. 지인은 부러울 만큼 요리 솜씨도 훌륭하고 아이도 정성을 다해 키운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집에서 논다고 표현을 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사노동은 쉽지 않다. 하지만 가사노동은 왜 노는 일로 여겨지는 걸까.  


나는 29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이다. 주말도 없이 아침부터 밤까지 육아와 가사노동을 한다.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난다. 이렇게 열심히 산 적이 있을까. 매일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바삐 살아가지만, 무임금에 연차는 고수하고 4대 보험, 퇴직금도 받을 수가 없다. 남편이 버는 월급으로 쌀을 사고 가스와 전기료를 낸다. 나의 생계가 온전히 타인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저녁이면 퇴근하고 준비된 저녁을 먹고 쉬는 신랑을 볼 때마다 여러 감정이 든다.  


요즘은 청년희망 저축 같은 정부지원 사업들이 소개되고 있다. 만 나이로 청년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관심을 두고 소식을 알아본다. 하지만 일정한 소득이 있는 근로자만 저축 가입의 대상자가 된다. 이럴 때마다 얼마나 맥이 빠지는지. 나 또한 가사와 양육을 하는 돌봄 노동자인데 이를 인정받지 못해 정부 지원의 수혜를 받지 못한다. 왜 전업주부는 근로자가 되지 못할까?


사회 기반이 되는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시간과 노동, 현금 등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 아이가 아닌 이웃의 아이를 돌보면 근로자가 되고, 가사 일은 집이 아닌 밖에서 하면 임금을 받을 수가 있다. 내 아이와 집안일을 노동시장에 맡기면 월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집 안과 밖에서의 활동은 무엇이 다를까?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가치까지 국내총생산 GDP으로 환산한다면 세계 경제대국 순위는 뒤바뀔 것이다. (이게 다 기본값을 남성으로 잡는 경제학 때문이다.)


집안에서의 일은-양육과 요리, 안락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련의 모든 행위-는 필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자신의 터전을 가꾸는 일이 커리어를 쌓는 일만큼 스스로의 삶을 가꾸는 일과 무관치 않음을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대다수의 여성이 평생 무임금으로 하고 있는 가사노동을 경제적/사회적 재평가가 필요하다. 가사노동의 가치가 올라가면 여성의 지위도 높아지고, 가사노동의 영역에 자연스레 남성들도 동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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