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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인 Nov 30. 2020

나의 ‘엄마 성 물려주기’ 실패담

지역과 여성 #1

나는 임신 10개월 만삭 임산부이다. 지난 4월에 처음 임신 사실을 알고 9개월 동안 출산 준비를 하면서 가장 공을 들인 건 ‘엄마 성 물러주기’이다. 내 SNS 알고리즘에는 이미 ‘엄마 성 물러주기’를 실천한 부부의 영상과 기사 콘텐츠가 도배되어 있었고 관련 자료와 사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때부터 꾸준히 신랑에게 영상과 기사를 스크랩해 노골적으로 ‘주변에 이렇게 엄마 성 물러주는 부부들이 많다. 가부장제를 우리 세대에서 끊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신랑을 설득했다. 다년간 여성학을 공부해온 아내를 신랑도 지켜보았고 여성주의 흐름과 사건을 제법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신랑은 처음에 나의 제안에 듣는 둥 마는 둥 흘러 듣더니 막달이 되어 아이 이름을 고민할 때가 되자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부모님이 허락하시지 않을 거라며 고민했다.


“우리 부부가 합의하면 부모님이 왜 반대를 해?”


이렇게 겉은 당당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시부모님이 인정해주실까 마음 졸리긴 마찬가지였다.


결혼하고 구청에서 혼인 신고할 때 처음 알았다. 혼인 신고서에 자녀의 성을 父 또는 母 성을 따르는 체크사항이 있는지. 혼인 신고서에 인적 사항을 쭉쭉 작성해 나가다가 뜻밖의 문항에 어리둥절하며 우리는 고개를 들고 구청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자녀 성 일단 선택하고 추후에 바꿀 수 있나요?” “아니요. 못 바꿔요.”


그때는 믿지 않았다. 속으로 ‘에이~ 못 바꾸는 게 어딨노? 직원이 잘 몰라서 하는 얘기겠지.’ 생각하며 아직 아이를 가질지 안 가질지도 모르는데 그때 가서 고민하자며 우리는 父의 성을 따른다고 체크했다.


이게 화근이었다. 알아보니 母의 성을 따른다면 아버지의 동의서와 출생 신고서를 제출하면 어머니 성을 쓸 수 있지만 父의 성을 따른다고 체크하면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가 없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이혼을 하고 다시 혼인 신고를 하면 아이에게 모의 성을 쓸 수가 있다는 거다. 맙소사!


SNS 팔로우 맺고 있는 여성학 학자들과 활동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니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현재 혼인신고가 아닌 출생신고 시에 아이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바꾸자는 운동이  있지만 연말에 출산 예정인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자녀의 성을 父의 성을 따르겠다고 체크한 우리 부부에게는 일단 출생신고를 父의 성을 따르고 이후에 가사소송으로 아이 성을 바꾸거나 또는 이혼하고 다시 혼인신고를 해서 성을 바꾸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이리저리 다방면으로 해결 방법을 알아보고 있을 때, 신랑이 나 몰래 시어머니에게 전화해 물어보았나 보다. 아내가 이러이러해서 엄마 성을 주고 싶은데 이를 위해서는 이혼을 해야 하는데 이러이러 해서... 서로 합의해서 엄마 성을 주고 싶다고 설명을 잘 했다던데 단칼에 어머니가 그랬다는 거다.


“더 이상 안 되겠다. 너 잡혀 사는 것도 못 보겠고 정인이 특이해서 더 이상 안 되겠다. 이혼해라.”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문구에 신혼 때 퇴사하고 무작정 타지역으로 주말부부를 강행하거나, 명절 때 각자 집으로 간다는 말씀에도 이를 허락한 시댁이었다. 이 말을 전해 들으니 마음이 착찹했다. 사실 아이가 누구의 성을 따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부모의 유전자를 반반 물려받고 태어난 아이이다. 단지 이 사회에 균열을 내는 작은 움직임이 되고, 아이가 커서 자신은 왜 아빠가 아닌 엄마의 성을 따르는지 한 번쯤 생각하고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길 바랄 뿐이었다.


출산을 한 달 정도 앞둔 지금 옆에서 등을 돌린 채 휴대폰에 빠져 있는 신랑에게 물어본다.

“이름 무엇으로 할 거야?” “우리 부모 성 쓰지 말고 뚱씨 어때?”


아아. 신랑도 골치가 아픈가 보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니 차라리 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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