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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인 Jun 11. 2023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지역과 여성 #7

임신 사실을 알고 태아 성별을 알기 전까지 생각이 많았다. 여아라면 사회 내 만연한 성차별의 피해자가 될 것이고, 남아라면 반대인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한국(남자) 문화가 미치지 않는 다른 문화권으로 가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뫼비우스 띠 같은 고민을 하다 9개월 뒤, 아들을 낳았다.     


시골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다소 여유롭게 양육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키즈카페 대신에 한적한 숲과 공원이 있고, 아이가 귀하다며 예쁘게 봐주시는 이웃 어른들이 있다. 한 번씩 도시에 나가면 왜 이렇게 눈치가 보이는지.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떼를 쓰거나 소리를 지르면 낯선 이들의 눈길이 불편해진다. 식당에 들어가는 일도, 바닥에 음식물을 흘리는 일도 부모는 가시방석이다. 반대로 시골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이웃들의 친절한 눈길에 마음이 놓이는데, 그 친절함이 반대로 간섭이 되기도 한다. 돌이 지나고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와 외출을 하다 보면 “몇 개월이에요?”와 더불어 많이 듣는 말은 “아들이에요? 딸이에요?”이다. “네 아들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남자아이라 자동차를 좋아하네', '아들이라 늦는다, 아들이라 그런다'와 같은 악의 없는 말을 아이와 듣게 된다.      


요즘 아이의 관심사는 공룡이다. 이전 관심사는 포크레인이었는데, 이번 관심사는 꽤 오래간다. 자신이 공룡인 줄 알고 손을 오므리고 크앙 포효하는 모습이 제법이다. 이끌지 않았는데도 아이의 관심사가 중장비와 공룡에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보면 태생적인 남녀 차이가 있나 하는 의문도 든다. 그중에서 “우리 손녀도 공룡과 포크레인 좋아해요!”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자 아이도 그렇죠?” 반가운 소리를 낸다. 남녀 차이가 아닐 수도 있구나!     


성중립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나름 노력한다. 색깔 구분 없이 옷을 입히고, 머리끈으로 긴머리를 묶어 준다. 중립어를 쓰고(예를 들어 유모차가 아닌 유아차 등), 미디어 콘텐츠를 고심해서 고른다. 여남으로 성별로 나누기보다는 '아이마다 다르지요'라는 말로 주변인과 대화를 마무리를 한다. 이런 노력들이 남편을 포함한 주변에 유난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들에게 핑크색을 입히고 인형을 좋아한다고 해서 동성애자가 되지 않는다. 남자는 축구를 좋아하고 여자는 인형을 좋아하고,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되고 여자는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건 벗어나야 할 고정관념이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잠재력을 가진 씨앗이다. 고정된 성역할에 벗어나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며 발아하기 위해서는 사회라는 토양이 중요하다. 남자답게, 여자답게보다는 한 인간으로 취향과 생각을 존중해 주는 어른들의 시선과 행동 변화가 필요하다. 틀에 박히지 않는 유연한 사고와 편견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이 모여 사회는 커다란 무언가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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