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오랜만에 만난 대만, 대만 누가 크래커
한국인이 먹여 살리는 가게?
대만을 여행해 본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씩 사가는 과자가 있다. 파가 박힌 크래커 두 겹에 쫀득한 누가를 넣어 만든 것인데, 한 번 맛본 사람이라면 만화 <요리왕 비룡>에 나오는 시식단들의 리액션처럼 "미미美美"를 외치게 된다고 해서 지은 이름일까란 상상까지 하게 된 그 누가 크래커다. 물론 한자는 아름다울 미가 아닌, 동음이의어인 蜜密 (굳이 풀자면 달콤한 비밀)이다.
반투명한 상자에 누가 크래커를 10여 개 넣어 판매하는데 가격은 한화로 약 8~9천 원선. 가게에 들어서면, 별다른 인테리어나 그런 것 없이 누가 크래커 통만 잔뜩 쌓아서 판매한다. 오직 단일 품목이며, 이 간식을 찾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는 걸 드러내는 듯 통 밖에는 한국어로도 표기가 되어 있다. 이곳에 들르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1개가 아닌 여러 개를 구매하는 통에 한 때는 인당 구매제한 수량까지 걸었을 정도로 인기 많은 가게인데, 매번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정말 한국인이 먹여 살리는 가게가 아닌가 싶다. (한 번도 이곳에서 대만사람이나 다른 외국인을 본 적 없었던 거 같다. 가게에 들어서면 들려오는 한국어들)
코로나로 인해 대만으로 가는 길이 거의 2~3년간 막혔을 때 이 누가 크래커는 여전히 살아 있을까 궁금했다. 수개월도 아닌 무려 2~3년간, 웨이팅까지 하면서 사가는 한국인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겼을 때 여기는 과연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오랜만에 방문한 그곳은 가게 모양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고 (여전히 성의 없는 인테리어이긴 하다) 사장님은 조금 친절해지기도(?) 예전엔 장사가 잘될 때는 종종 "사장님이 불친절하다" 등 후기도 있었던 거 같은데 오랜만에 방문하니 부쩍 반가워하는 눈치다. (내가 대만 방문했을 때는 12월이었으니, 지금쯤은 다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방문하면 나도 최소 3~5통은 사가는데, 남은 대만돈 털어내기에도 좋고 예전에 1통만 사 왔다가 후회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샀을 땐 "그래봤자 그냥 크래커에 누가 넣은 거지"했는데, 과자를 꺼내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아 이거 맛있네"라고 감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만 누가크래커는 전자레인지에 약 5초-7초 짧게 돌려서 먹으면 누가가 살짝 말랑말랑해지는데 이게 정말 맛있다. 1개만 먹어야지라는 생각은 "1개만 더"로 바뀌고 어느덧 반통을 비우고 난 후에야 정신을 차릴 정도였다.
대만 사람들은 여기 몰라요
예능 <꽃보다 할배 대만 편>부터였을까. 언젠가부터 대만 여행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대만에 방문하면 꼭 사야 하는 쇼핑 간식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대만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극찬하는 간식이 바로 미미 누가 크래커였다. 어느 날 대만 친구와 함께 이야기하다가 한국 사람들이 대만 방문하면 꼭 사가는 간식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는 "미미크래커? 처음 들어봤어요"라는 반응이었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대만에서 누가 크래커를 먹긴 하지만 명절이나 연휴 등에 먹는 간식 (우리나라로 치면 한과, 약과 같은 느낌일까) 정도라고 한다. 대만 사람들이 누가 크래커 사는 가게는 각자 다다르지만 미미크래커라는 곳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이 친구뿐 아니라 다른 대만 타이베이 출신 친구들 등 약 대여섯 명 모두 비슷한 반응이었다. 아예 처음 들어봤다던가, 한국인 친구 때문에 알게 됐거나.
생각해 보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도 종종 우리는 잘 안 먹는 과자 선물 세트를 사는 경우가 있으니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이거야말로 바로 현지맛집(간식) VS 여행자맛집(간식) 차이가 아닐까. 옛날엔 나 역시 현지인 맛집에 집착을 꽤 했었다. (물론 지금도 길거리, 노포를 많이 선호하는 편이다)
미미 크래커는 100%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간식으로, "어차피 대만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누가 크래커 브랜드"하고 살짝 깔봤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직접 맛을 본 이후엔 이 생각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오히려 종종 현지인들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간식 등은 나도 시도해 본다. 현지인들이 모르는 여행자 맛집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두 가지 가설을 내릴 수 있다.
1) 정말 완벽하게 여행자들 타깃으로 그 입맛에 맞춰서 제품을 개발한 경우
2) 현지인들에게 알려질 계기가 없었던 경우
이 누가 크래커는 어디에 속한 걸까? 미미크래커를 먹어 본 대만친구에게 물어봤을 때 맛은 있는데, 굳이 줄 서서 사 먹을 맛 정도는 아니고 자기는 집 앞 과자 가게에서 그냥 살 거 같다고 답했다. 나도 대만에 있는 몇몇 다른 유명 누가 크래커들을 사 먹어 보긴 했지만, 너무 달거나 뭔가 부족해서 결국엔 여기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어느 블로거가 먼 옛날, 이 노점상(지금 가게 전신은 노점상이다)에서 우연히 미미크래커를 사 먹고 포스팅을 하고 그게 일파만파 퍼진 걸까? 여행 다니면서 종종 "한국인만 있는 현지 맛집"을 갈 때마다 궁금해진다. 이 식당, 간식을 최초로 포스팅한 블로거는 누구일까 하고. 대만 타이베이의 이 누가 크래커 브랜드는 누가 찾아냈을까?
https://brunch.co.kr/@msk-y/23
자고 일어나니 조회수가 1000, 2000,3000 돌파 알림 이후 10000돌파가 되어 있길래 왜이렇게 빠르지? 란 생각으로 확인해보니 모바일 메인 - 여행맛집에 올랐네요. 매번 글을 쓰고 메인 픽되기 까지 최소 하루, 이틀 정도 소요됐던 거 같은데 이번엔 역대급으로 빨리 올라 살짝 어리둥절하기도 했습니다. 여태 올린 대만 시리즈 대부분 여행맛집 메인에 한번씩 올라간 것에 대해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번 캡쳐를 해두진 않았지만, 이번엔 대만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기념으로 한 번 박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