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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Jul 13. 2019

부모님의 결혼 잔소리에 대충 대답했더니...

부모님은 내가 올해 진짜 결혼하리라 믿고 계신다. 큰일 났다. 

나는 올해 서른, 

90년생 말띠 여자다. 

내 주변을 보면 가장 결혼을 많이 하는 나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올해 봄을 보내면서 살면서 가장 많은 동갑내기 친구들을 결혼 보내고, 

또 남은 친구들은 내년 식장 잡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거 보면 확실히 소위 말하는 결혼적령기는 맞는거 같다.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나이에 떠밀려, 누군가에 떠밀려 결혼이라는 과업을 달성하고 싶단 생각은 없다

언젠가 "이 사람이랑 정말 살면 좋겠네"라는 확신이 생기면 하고 싶다는, 

누군가가 보면 철없네 하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100세 시대 아닌가. 

옛날에 수명이 짧았던 시대 60~70세라면 인생의 1/3 인 시점에 결혼하는 게 맞겠지만 

지금은 결혼을 하면 앞으로 함께할 날도 거의 2배 수준으로 늘어나는 마당에 그리 서두룰 필요 있을까란 생각도 하고 있다. 물론 아이를 낳고 기를려면 그래도 젊은 나이에 하는게 고생을 덜한다곤 하지만, 이건 일단 부수적인 문제로 잠시 접어두자. 결혼을 한다고 무조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요즘 시대에선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사상이니. 


우리 부모님은 옛날 분이시고 경상도에 사신다. 

무조건 정답은 아니지만, 지방에서 태어나서 그 곳에서 쭉 살아 취업을 한 여성의 경우 결혼을 일찍 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것도 영향을 끼치겠지만 사회생활을 비교적 빨리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혼 역시 비교적 빨리 하는 듯 하다. 나 역시 지방 출신으로서, 고향에 쭉 살아온 친구들은 20대 중후반에 일찍 결혼을 해 이미 아이엄마가 되어 있다. 한편 서울 친구들은 올해 결혼하는 친구들이 가장 많고 아이를 가진 동갑내기 친구는 없다. 내가 살았던 지방에선 그래서 여전히 여자 나이 20대 중후반을 넘기면 노처녀란 인식이 강하다. 

나는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내 또래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좀 많은 편이다. 

그래서 사실상 10살 넘는 손주를 보셔야하는 아버지이지만 죄송스럽게도, 고집스러운 딸래미 탓에 아직 "할아버지"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께선 나를 기르실 때 모든 것을 오픈마인드로 기르셨지만 결혼만큼은 보수적이었다. 

20살때부터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해야한다" 라는 소리를 매번 명절때마다, 매년마다 꼭 하셨다. 아니, 요즘 시대에 대학 졸업하자마자 결혼이라니...그럴 때마다 나는 앙칼지게(?) "아니 누가 대학졸업하자마자 요새 결혼하냐구요" 하고 말대꾸를 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선 뭐라고 하셨지만 더이상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않아서 "아, 네네네네" 하고 그냥 넘어갔다. 


오죽하면 나는 24살때 아버지의 꼬임(?)에 빠져 맞선 자리에 나간적도 있었다. 

(사실 선인지 몰랐고 아버지랑 밥먹는 자리인줄 알고 나갔는데 선자리인걸 알고 기겁했다) 



20대 후반이 되던 때, 

이제 아버지의 결혼하란 잔소리가 조금씩 부담스러워질 때 쿨하게 사는 한 친한 언니가 말하기를 

"나는 부모님이 결혼하라고 하면 그냥 네, 올해는 할게요 라고해. 뭐 내가 알겠다는데 부모님이 뭐라 더 하겠어. 그냥 굳이 거기서 실랑이를 안하는게 최선이지" 

오, 나는 이게 정말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 생각해보니 일일이 말대꾸하거나 반항하면 어차피 부모님 속만 상하고 나 역시 기분이 안좋다. 그냥 대충이라도 그냥 부모님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하는게 차라리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올해 초, 신정 연휴때 아버지께서 "딸, 이제 서른이야. 올해는 꼭 결혼해야돼 안그러면 결혼 영원히 못한다"라는 말에 "네네네네네네" 하고 긍정의 뉘앙스(?)를 비쳤다. 

그러자 부모님이 화색이 돌더니 "드디어 내 딸이 결혼을 하는구나!"하고 감격을 해버리신거다. 

그리고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OO가 올해에 결혼할거에요" 하면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아..아니 이게 아닌데. 


아뿔싸. 

내가 맨날 반항만 하다가 갑자기 수긍하니까 부모님이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이 전략은 애초에 처음부터 저 자세를 일관할 때 효과가 있는 것있거늘. 


그 이후 아버지는 2주에 1~2번씩 전화하면서 "꼭 결혼할 놈 데리고 와라. 양아치만 아니면 다 된다. 안 데리고 올거면 집에도 내려오지 마라"하면서 신신당부하셨다. 


다음주, 아버지 음력생신이라 한 3일 정도 연차 내고 내려가서 아버지 곁에 있을 생각이었는데 저 으름장이 생각난다. 정말 효녀라면 아버지 생신에 맞춰 결혼할 사람 데리고 가서 "서프라이즈~"라도 해줘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는 형편이라. 


부모님의 결혼하란 소리에 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가장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지. 

여전히 그 답을 알고 싶다. 이 문제에 대한 답, 혹시 알고 있다면 공유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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