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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n 28. 2021

망가진 인간들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닐까?

슬기로운 의사생활 2 2화에 들어있는 또 다른 장면이다.


간담췌외과 교수님에게는 골치 아픈 환자가 한 명 있다.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간 이식을 한 환자다. 그것도 두 번이나… 두 딸의 간을 이식받아 수술을 한 이후에도 환자는 여전히 술을 끊지 못하고 있고 다시 술을 먹고 내원하면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약을 과도로 복용한 것 같다. 환자는 부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고 의사와 대면하는 내내 거짓말, 부인의 하소연.


절망하는 의사. 두 번이나 어려운 수술을 해서 살려낸 환자가 또 같은 잘못을 반복하면서 망가지고 있다. 그를 살리기 위해 간을 기증한 딸들에게도 그리고 이런 기회조차 없이 망가진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너무 미안한 감정이 드는 순간 의사는 더 이상 자기를 찾아오지 말라고 통보하고 환자는 망연자실해한다.


이럴 때 우리는 이런 말을 한다.


‘네가 정말 인간이니? 인간이면 이럴 수는 없다.’ 맞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환자는 같은 실수를 3번째 반복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환자의 의지 부족인 것이고 이 환자는 정말 다시는 고쳐 쓰지 못할 그런 인간인 걸까?


나는 판단을 하지 못하겠다. 이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인간의 내면은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그것을 들여다보고 싶어도 좀처럼 그렇게 하는 게 힘이 든다. 자기 자신도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망가진 인간들, 그럴 때 우리는 아주 쉽게 ‘인간은 고쳐 쓰는 것 아니다.’라는 말을 내뱉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망가진 인간은 자신이 어디가 망가졌는지 알지를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환자의 경우에 도대체 왜 그렇게 술을 먹게 되었는지 간 외에 내면에 무엇이 고장이 나 있는 것인지를 겉으로 봐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현대에는 고장 난 인간들이 엄청나게 많다.


너도 나도 고장 난 채로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런 사람들끼리 또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고 외눈박이 세상에서 외눈박이는 이상한 것이 아니니 자신들의 아픔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우리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은 굳이 현실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찾아서 교류할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고 그런 와중에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은 줄어들어가니 자신이 정말 이상하거나 아파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제는 너무나 흔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 규격화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상함을 좀처럼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에 무관심해지고 또 냉담해지고 있다.  


우리는 나이 든 사람에게, 특히 꼬장꼬장한 사람에게 편견이 많다.


아버지와 나의 트러블도 결국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어느 순간 막혀버린 것이 제일 큰 원인이었다. 아버지가 나에 대해 기대가 컸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둘째인 나는 맏형에게 모든 의무와 기대를 맡겨버리고 그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과거 지하갱도에서 석탄을 캐는 사람들은 내부의 가스등을 통한 질식으로 목숨을 많이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갱도에 가지고 가서 상황 변화를 탐지했다고 하는데 아마 나의 특질은 그런 카나리아와 닮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과거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보내시고 난 후에 눈이 빨개지도록 우셨던 그 기억이 자꾸 나에게 겹쳐지는 데 지금의 내가 두려운 것은 결국 화해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때문일 것이다. 누가 특별히 악의를 가지고 잘못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말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수한 흉터를 남긴다.


‘형제 중에 너한테 제일 기대가 많았는데 네가 이럴 줄은 몰랐다.’라는 아버지의 말은 나를 낙오자, 실패자로 낙인찍어 버렸다. 사실 다른 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도 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사람들의 평가에 종종 상처 받기는 해도 타인의 평가는 결국 나를 잘 모르는 무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평가를 깊이 받아들여 내면화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평가는 다르다.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아버지의 말 한마디는 그 자체로 나를 나락까지 밀어 버린다. 아무리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해도 아버지의 평가는 그 자체로 날카로운 칼날이다. 그것이 나를 베고 지나가면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계속 덧나 버리는 것이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실망과 상처가 나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버지를 실망시켰다는 것, 그리고 좌절시켰다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운 것이다.


자식이라고 해서 부모의 기대를 전부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난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을 아주 깊이 내면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대로 따라줬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그런 미안함. 너무나 고단하게 살아온 삶에 아무런 보답이 없다고 느끼는 저 허무함과 절망감이 그대로 느껴져서 미안하고 그렇지만 아버지의 말이 너무 아프고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 힘든 지금의 상황이 계속 절망적이다. 한발 단 한 발을 내딛는 것이 언제나 힘들다. 누구에게는 너무 쉬운 게 다른 누구에게는 너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타인의 사정 따위 이해하기 어렵다. 고장 난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닐까? 그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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