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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n 28. 2021

인랑

길들여진 인간

이런저런 생각들이 갑자기 밀려오다 문득 예전에 감상한 애니메이션 한편이 떠올랐다.


‘인랑’ 무척 인상적이긴 했지만 근래에는 떠 올려 본적이 없는 그 작품이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은 내가 그와 관련된 생각에 골몰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옳음’, ‘정의’, ‘길들여 짐’, ‘탈출’, ‘화해’ 같은 주제에 내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자 지난날의 정보들이 되살아나 새롭게 해석된 모습으로 내 안에 펼쳐지는 것이 신기하다.


이 애니메이션도 대체역사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설정과 그 안에 나타나는 여러 미적 요소와 장비들에 관심을 가지는 마니아들이 많이 있지만 그런 세부사항에 대한 정보는 지금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고 또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나는 언제나 작품이 이야기하는 주제를 받아들여 내식으로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이 작품도 내식으로 그냥 해석해서 풀어보려 한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대립하는 서로 간의 옳고 그름이 엇갈리는 순간 정치놀음이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투쟁하며 외치던 인간의 가치, 공존의 가치, 타협의 가치는 사라지고 오직 상대를 말살하여 소멸하는 ‘힘’의 논리에 의한 질서만 남게 되었을 때 그로 인한 가치 상실의 황량한 풍경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이라 하겠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시대적 상황에 의해 ‘인간’이기보다는 조직에 충성하는 ‘늑대’로 길러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은 말살된다. 자신이 사회의 질서와 정의를 수호하는 수단임을 자각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상실되는 인간성으로 인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없는 인간. 그런 인물이 한 소녀의 자살폭탄 사건에 연관되면서 내적으로 눌려있던 인간성에 대한 감각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시대적 사명이라는 미명 아래 ‘마비’되어있던 인간성이 풀려나 사고하는 인간이 되면서 혼란을 겪는 주인공. 그리고 그런 주인공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각 정치조직들의 암투가 벌어지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 명령대로 대항세력을 몰살시키는 주인공 그 과정에서 잠시 깨어났던 인간성은 다시 잠식되어 가는데 그 순간 직속상관은 주인공에게 자신이 사랑하게 된 여인을 조직의 이익을 위해 사실할 것을 명령하고 주인공은 조직의 명령과 자신의 인간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이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며 여자는 서서히 쓰러져 내린다.


무리 속에서 계속 살고 싶으면 무리의 룰을 따르라. — 길 들여진 개, 여주인공의 대사 그리고 외부에 저격수가 있었다는 설정은 마지막 해석을 좀 더 자유롭게 관객이 알아서 하라는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여주인공이 내뱉는 빨간 두건의 이야기는 인간과 늑대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인간성을 각성시키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지만 주인공은 결국 총을 쏘고 만다. 그가 직접 그녀를 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총을 쏘면서 갈등하는 그 자체. 길들여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슬픈 짐승의 몸부림이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주제라 하겠다.


정의라는 이름,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진 인간이 자신이 가장 추구해야 할 사랑이라는 가치도 제 손으로 말살하고 살아간다면 그 삶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런 그들이 추구하는 정의라는 이름의 질서 속에 과연 미래는 있는 것일까?


길들여짐에서 탈출하여 자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지금 이 작품이 문득 떠오른 것이 나름 내게는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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