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유감

단절

by 피터피터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교육받기를 소원하셨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에는 고단한 집안일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학교였었고 미래와 변화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좌절된 것이니 그 상처가 크셨던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정서는 자식인 나와는 단절된 상황이었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내 어릴 적에도 보릿고개는 이미 사라져 가는 과거의 풍경이었고 그런 이야기로 우리는 학교라는 곳을 막연히 동경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에도 먹을 물을 긷기 위해 하루에 몇 킬로미터를 넘게 왕복해야 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나의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더 공감을 얻을 상황인 것이다. 학교에 대한 그 절박함을 오히려 그곳의 아이들은 이해할지도 모른다.


시골에서 부천으로 올라오고 난 뒤 다니는 학교 근처에 신학대학이 있어서 그곳의 데모로 아래쪽에 위치한 우리가 수업 중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눈과 코가 매워서 방방 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 한 것이었다. 난 그전까지 한 번도 최루탄이 뭔지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그날 그렇게 호된 경험을 하고 난 이후에야 데모라는 것이 대단히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책을 사러 지하철을 타고 멀리 서울의 종로서적까지 갔을 때 서점 근처에서 대학생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쫓기고 뒤에서 소리를 치면서 그들을 쫓는 다른 어른들의 난폭한 모습에 가슴이 싸늘해 질만큼 놀란 기억도 아직 선명하게 가지고 있다.


이런 기억들이 없다면 1987 같은 영화에 나오는 민주화 투쟁은 지금 시각에서 그냥 드라마틱한 사건 정도가 될 것이다. 그 시대의 억압적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끼는 것과 영화로 감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테니 말이다. 아마 그 영화를 보면서 그 속의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사람들은 홍콩 시위대와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 세력들일 테지 우리의 젊은 세대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시대의 감정과 분위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 다른 세대에 구전되는 정보들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힘이 들고 함께 이해하기는 더욱 힘이 든다.

그런데 그런 서로 간의 이해 없이 세상의 많은 일들이 진행된다. 그 당시의 사회분위기가 그냥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었고 다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어린 나도 열심히 공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고향을 떠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전혀 아는 바도 없었지만 그 자체가 큰 일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너무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나도 다 컸다고 어린 마음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는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전혀 아는 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거대한 단절 그 자체였는데 말이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도시와는 다르다. 일단 시골은 연결성이 강하다. 학교, 집 그리고 놀고 공부하는 모든 것이 동네단위로 단체 활동이 된다. 그 속에서 함께 뒹굴고 뛰면서 자연 자체에서 놀고 성장하는 것이다. 시내에서 물놀이, 각종 장난과 뜀박질, 비밀기지 만들기, 자전거를 타고 사방 쏘아 다니기 등등 그곳은 열린 공간이었고 학교에서도 학급이 적은 만큼 모든 선생님과 친숙하고 공부도 나름 하고 반장을 오래 했기에 작고 빈약한 체질에도 학교생활 자체에 위축감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까불까불 한 것이 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도 긴 시간을 함께 했으니 당연히 서로 친밀함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상이 갑자기 모두 바뀌어 버린 것이다.


부천으로 올라온 이후 학교는 훨씬 커졌다. 전학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처음 등교했던 아침이 유난히 추웠던 것은 아직도 기억난다. 남자 선생님이 새로운 담임이 되었고 교무실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막막한 기분이었다. 학교 교무실이 너무 컸고 모르는 어른들이 가득한 교무실의 그 분위기 자체가 너무 생소했다. 난 그 자체로 압도당하고 있었다. 교실을 선생님이 알려주고 나는 혼자 교실을 찾아 들어섰다. 6학년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이라 반배정이 새롭게 되어 모두 어수선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아이들끼리 소란스럽게 떠들고 난 그냥 교실 뒤쪽으로 들어가서 뒤편의 사물함에 기대어 있었다. 그때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애 하나가 나한테 다가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전에 못 보던 얼굴이라고 말을 했고 나는 전학을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 애가 씩 웃었다. 그 인상이 보기 좋았고 친해질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자 나는 그 순간 정말 엉뚱한 짓을 하고 말았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넣고 주먹을 쥐어 보이는, 시골에서는 ‘너 엿 먹어.’라는 놀림의 말로 통하던 그 짓을 보여주면서 이게 여기 애들 사이에서도 통하는지 물어봤던 것이다. 그러자 그 애가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그럼, 그럼… 당연히 통하지.’라고 하면서 크게 웃어 보였다. 이후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급히 앉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나의 이 바보 같은 짓이 나중에 큰 소동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그리고 한 3주 정도를 정말 정신없이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면서 보냈다.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낯설었고 내 억양에 사투리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면서 당혹스러워하던 나는 어느 날 하교 후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다가 갑자기 처음 보는 애가 내 뒤에서 접근하여 아는 척을 하였다. 그러면서 ‘어이 촌놈. 나 좀 봐.’하면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학교 뒤편으로 나를 끌고 가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고 거기에는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덩치 좋은 아이 하나와 작은 여자애가 같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시골에서는 싸우고 장난은 쳐도 이런 식으로 삥을 뜯는 일은 없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야 가진 것 다 내놔봐.’ 난 순간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해서 크게 뿌리치고 몸을 트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홱하고 채 졌다. 그리고 그대로 쿵하고 뒤로 쓰러졌는데 덩치가 한참이나 큰 놈이 갑자기 내 위로 올라타고 주위의 돌멩이를 주워서 내 머리 위를 탁하고 쳐버렸다. 큰 소리가 나면서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야 내놔.”

“지금 아무것도 없는데요.”


나는 당시 6학년이었데 나도 모르게 존대를 했다. 그만큼 덩치가 컸다. 게다가 이런 일에 너무 능숙해 보였다. 덩치 큰 애가 대충 뒤져 보아도 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내일 5천 원 가져와.”

“집에 아무도 없어서 안 되는데요.”

“뭐? 집에 부모님 안 계셔?”

“네 할머니는 있는데 집에 돈이 없어요.”

“야…”


그 녀석은 나를 한참이나 째려보다가 뒤에 녀석에게 ‘뭐야 이 새끼, 말이 다르잖아.’라고 투덜 되면서 일어섰다. 그들끼리 뭐라고 떠들고 나는 머리가 따끔거려서 만져보니 피가 나고 있었다. 크게 깨지진 않았지만 까여서 피가 나는 것이었다. 내가 손으로 피를 문지르고 그것을 바라보자 큰 녀석이 그만 가보라고 소리치고는 자기들도 반대방향으로 사라졌다. 순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당시에 나는 학기에 맞추어서 문제집과 학습서를 분명히 구입하기는 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할머니가 돈이 없어서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내가 언제까지 그걸 사서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묻고 다닌 게 아마 발단인 것 같았다.


난 그 이후로 그 애들을 또 볼까 봐 하교할 때 꼭 반 아이들과 섞여서 교문을 나왔고 그 이후에는 항상 집 쪽으로 달려서 귀가했다. 그렇게 학기 초는 항상 조마조마하게 떨면서 지내야 했지만 그런 사실을 집안 누구에게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전학 후 중간고사를 치고 성적표를 받았을 때 내 앞으로 여자아이 2~3명이 더 있었지만 남자 중에서는 내 순위가 가장 높게 나오면서 그동안 나한테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 갑자기 ‘오~’하는 소리를 내었다. 내가 일어서서 책을 읽을 때도 사투리가 있어서 자기들끼리 웅성 될 때에는 공부도 못하는 그냥 촌놈이라고 생각하다가 성적이 잘 나오자 놀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뒤였다. 처음 전학 왔을 때 친한 척을 한 이후로 이상하게 나에게 거리를 두었던 짧은 머리의 녀석이 나에게 다가와서 ‘야 뭐야? 나랑 같은 종류인 줄 알았더니 아니네? 니가 좀 노는 놈인 줄 알았는데 너 범생이냐?’ 나는 그 말을 듣고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그 이후에 알게 된 건 녀석이 학교에서 알아주는 싸움꾼이었다는 것이고 녀석은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중학교 애들까지 연이 닿아서 무리로 움직이며 노는 아이였었다. 그런 그에게 내가 학기초의 어수선함을 이용하여 말을 걸었더니 나를 자기 곁에 두고 부리기 위해 덩치 큰 선배를 불러 그렇게 겁을 주고 삥 뜯기를 한 것이었다. 그 이후 그는 더 이상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나를 가만히 두었다. 나 외에도 그는 손볼 녀석들이 많았던 것이고 나는 하굣길에 뒷골목에서 그 애가 덩치 큰 녀석들과 떼로 싸우고 있는 모습도 본 적이 있었다. 시골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난폭함이 이곳에는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정말 위축되고 쪼글어 들어서 학교가 파하면 언제나 급하게 학교를 탈출해서 집으로 달려갔다.


생활의 패턴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르게 단절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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