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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n 28. 2021

자기 삶 살기

내적 불안 확인하기

때론 머리가 멍해 질정도로 무언가 내 안에서 부글 될 때가 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부딪히고 엉키고 꼬여서 비명을 지르는 듯한데 그게 무언지 알 길은 없다. 그렇게 아무런 두서도 없이 어느 날 특정 감정들이 날 압도하는 날이 있다. 하지만 멍한 기운만큼 나 자신도 나른한 기분에 그냥 내 안의 난장판을 내버려 둔다. 그렇게 두면 알아서 사라지고 없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난 내가 좀 열정적인 사람이지만 꽤 일관성이 있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에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순응하지도 않지만 그것은 내면적 태도일 뿐이고 겉으로는 그게 누구든 문제를 만들어서 대립하고 싶지 않은 좋게 말해 소극적, 나쁘게 보자면 겁쟁이였던 것이다. 난 좋아하는 것에는 깊게 빠져드는 편이지만 싫은 것은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너무 심해서 새로운 것을 익히거나 배우는데 문제가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억력이 원래 안 좋은 것인지 아니면 싫은 것을 내 안에 들이지 않으려는 거부반응인지 모르겠지만 한번 싫다는 감정을 느낀 과목, 주제에 관한 내용들은 아무리 외우고 익혀도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을 마치 배운 적이 없는 것처럼 하얗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는 아주 쉽게 기억하는데 그것들은 대게 이미지와 느낌으로 내 속에 깊게 각인되어 삶의 풍경 곳곳에서 무작위로 재생되곤 하는 것이 나의 기억력은 어쩌면 일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좌절감의 많은 부분은 내 지식의 총량은 항상 일정 범위 안에서 더 늘지 않고 답보상태에 있다는 감각이었다. 하나를 배우고 익히면 기존의 것들이 내 안에서 빠져나가 사라지는 느낌은 그냥 나이 먹어감에 따른 노화 작용인 것일까? 아니면 나 자신의 자질적 한계인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허무감을 어느 정도 삶에서 경험하게 되지만 나 스스로는 이 감각이 너무 오래되어버려 어느 순간부턴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노력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겠다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적어도 나의 뇌는 세상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용량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최근 마음이 가는 것이 불교공부인 것이다. 이렇게나 부족한 내가 ‘옳음’이라는 가치에 매몰되어 세상에 적의를 가지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고 그렇다면 내 안의 무엇이 잘못되고 꼬여있는지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 최근에 내린 결론이라 하겠다. 그렇게 들여다본 내 안은 정말 낯선 풍경이다. 이렇게나 삭막하고 어둡고 우울한 것이 나였나? 하는 기분 그리고 나를 억누르고 있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정말 크다는 것. 내가 들여다보길 외면하면서 아무 근거도 없는 불안이 커다랗게 키워져 그것에 휘둘리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조금씩 자각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극과 공포는 생존을 위한 가장 필수적인 감각이면서 또한 가장 무의식적인 영역이다. 자극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체질은 모험가적 기질을 가지지만 공포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완벽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성취보다 실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여 모든 것에 완벽을 추구하는 자세는 얼핏 보기에 성실하고 노력하는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냥 위험을 회피하는 내적 방어 기제일 가능성이 높고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에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는 고약한 기질인 것이다.


무언가 미루기  좋아하고 하나의 패턴이 만들어지면 그것에 집착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기질. 그것은 사실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의 실체를 외면하기 위한 무의식적 반응일 수 있고 그렇게 자꾸 자신과의 소통에 소홀해지면 그 불안은 서서히 자라나 어느 순간에는 통제불능의 공포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나는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공포라는 감정에 온몸이 압도되어 꼼짝도 못 하게 되어 버린 적이 있다. 그건 가위와는 다른 무엇이었다. 그냥 공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덮어버리는 감정의 폭주. 순간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숨 막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비와 같은 느낌으로 내가 위축된다. 내적으론 끝없이 길게 느끼지만 실제는 짧은 시간 동안 공포라는 창이 전신을 완전히 꿰뚫고 이후 나는 무기력하게 늘어졌다.


나는 내 안에 무언가를 키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그것을 직접 확인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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