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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n 28. 2021

겁쟁이

호빗굴

나는 겁쟁이다.


완벽한 겁쟁이, 그리고 천부적으로 타고난 겁쟁이라 할 수 있겠다. 톨킨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호빗만큼이나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탐욕스럽고 또 안락함을 추구하는 그런 겁쟁이다. 그래서 난 평생을 나만의 토굴을 만드는데 심취해 있었고 그 속에서 머물며 온갖 잡다한 것을 조물딱 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내 안에 자리 잡은 불안은 근원적으로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느끼며 이따금 몸서리칠 때마다 난 나 자신이 잘못되어서 그렇다는 생각보다는 세상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빠져들어갔다.


내가 세상으로 눈을 돌리자 그곳은 온통 엉망이었다. 그럭저럭 돌아가기는 하지만 서로를 향한 폭력과 탐욕이 난무했고 정의란 실현되지 않고 욕심쟁이들이 세상을 우걱우걱 먹어치우고 있었다.  눈에 그것은 정말 기괴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아직  자란 우리들은 그냥 공부라는 이름의 노동에 길들여져 가는 기계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피조물이지 의문을 가지고 세상을 탐구하는 것을 허락받은 존재가 아니었다.


숨이 막혔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난 예민하고 허약했다. 어느 순간 숨이 막힌다는 것을 정말 뼈 속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에 노출된 많은 아이들이 감각적 마비를 선택했고 난 온갖 속임수를 궁리하며 교활해지기 시작했다. 속여야 했다. 나도 그리고 주변도 모두 다.


두려움이 나를 덮쳐 왔을 때 난 나의 나약함을 숨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냥 주변을 흉내 내며 난 나만의 숨구멍을 찾아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세상사에 대해 어른들은 둘로 쪼개져버렸다. 세상을 썩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과 철없는 학생, 무식한 노동 쟁이들 그리고 선동가, 빨갱이를 욕하는 사람들. 세상은 서로 다른 색안경을 낀 맹인들이 서로 다른 주장과 욕설, 해설을 내놓으면서 자신들의 유식함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솔직히 관심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관심을 가지는 모든 부분에 어른들의 대답은 항상 넌 공부나 열심히 해였고 크면 다 알게 되는 것을 왜 궁금해하느냐는 것이었다.


이 시기 허약하고 빈약했던 나의 정신은 극도로 불안했고 그래서 ‘정의’에 더 목이 말랐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인간은 허약할 때 알량한 ‘정의’에 매달려 상대를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에 대한 무자비한 폭언을 퍼부어대는 것으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면서 그렇게 영웅 놀이에 빠져들어 이성을 마비시키고 중독된 정신으로 온갖 미적 탐구를 지속하면서 엉터리 세상이 우리를 억압한다고 그렇게 믿고 저항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무엇에 대해 그렇게 저항하는 것일까?


나의 거짓말은 점점 능숙해져 갔고 무엇보다 난 스스로를 속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난 어느새 감각적 쾌락에 빠져 대열에서 한참 뒤떨어진 낙오병이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 서서히 나이만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선택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가 버린 내면의 늪 속에서 난 가끔씩 나의 삐뚤어진 자기기만이 만들어낸 골룸을 마주하게 된다. 집착…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나의 ‘보물’이 무엇인지 사실은 나조차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소통 부재. 겁쟁이인 나는 나와의 소통조차 그렇게 끊어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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