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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18. 2021

빗소리

감각하다.

“쏴아아 아아~~~.”


빗소리, 가끔씩 잠들기 힘들어 들썩일 때 어플에서 빗소리를 찾아 듣곤 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빗소리는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인공의 소리가 되어버렸다. 난 유난히 빗소리에 안정감을 느끼는 것인지 많은 불면의 밤을 이 빗소리와 함께 했다.


오늘 습한 기운을 좀 가시게 하기 위해 문과 창을 모두 열었다. 그리고 점심을 챙겨 먹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나 자신에게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었다. 내 몸 군데군데가 긴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뭉쳐있다. 그래서 더 힘을 뺀다.


“쏴아아 아아~~~.”


갑자기 빗소리가 들린다. 소나기 같다. 빗소리가 크게 나기 시작한다. 열어둔 창으로 비가 몰아쳐서 조금 창을 닫지만 그래도 완전히 닫지 않고 소리가 다닐 통로를 만들어둔다. 이번 여름이 오기 전까지 꽤 여러 번 비가 왔던 걸로 아는데 기억나는 빗소리가 하나도 없다. 내 마음의 문이 항상 닫혀 있었기에 그래서 귀로 소리가 들려도 그것이 내 가슴까지 닿지는 않았나 보다. 이번 빗소리는 내리는 즉시 내 마음에 닿았다. 이 이미지와 소리는 이제 나의 인생 곳곳에서 생명력을 얻고 내가 힘이 들 때 내 곁에서 날 달래 줄 것이다.


인생에서 큰 재산을 얻었다. 크게 내리던 빗소리가 글을 쓰는 동안 잔잔해진다. 바람이 조금 더 불지만 빗소리는 안정적이다. 정적이다. 사방이 어둑해져서 방의 불도 꺼본다. 소리가 더 멀리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와 창에 부딪히는 것이 느껴진다.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창으로 빠져나간다. 저 멀리에서 우르렁 소리가 들린다. 천둥까지 치려나 보다.


삶을 살아가면서 보는 것, 이해하는 것에만 너무 치중했던 것 같다. 삶은 때로는 그냥 느껴야 하는 것임에도 말이다. 자연의 소리엔 생명력이 있고 냄새가 있고 온도도 있다. 바람이 내 곁을 스칠 때 서늘해지는 감촉이 좋고 약간 비릿하게 느껴지는 냄새도 좋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자체로 충만하다는 것을 감각한다. 깊게 들이쉬는 숨에 아직 뭔가 가슴 끝쪽이 저릿한 듯 하지만 그래도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난 살아있다.


다시 저 끝쪽에서 우렁, 우렁 하면서 공기가 울린다. 빗소리 사이에 작은 벌레소리와 새소리도 미묘하게 끼여있다. 이토록 사람 사는 소리 없는 자연 자체를 언제 들어보았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내 어릴 적 외할머니 집에서 나무마루에 누워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감상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여름 그때는 매년 제비가 찾아와서 처마 밑에 지어진 자기 집에서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여름 내내 시끄럽게 굴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그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나의 여름의 기억은 왜 거기에서 멈춰진 것일까? 그 이후 무수히 많은 여름을 보냈음에도 따로 기억나는 행복한 소리와 감각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번쩍’


빛이 번쩍이고 큰소리가 지난다. 아마 비가 조금  세게 오려나 보다. 여름이다. 분명히 내가 어릴  감각하던  여름이다. 이상하다 어린 나와 지금의  사이에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이렇게나 동질감을 느끼는  하나의 여름 속을 지금 내가 지나고 있다는 것이 그냥  이상하다. 기억이란  이상한 것이다. 오히려 가까운 시간들이 내게는  멀게 느껴지고 다시 떠올리기 힘들다. 최근의 시간들은 너무 흐릿하고 색이 없고 밋밋하기만 했다. 내가 그만큼 감각을 닫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말이다. 아마 외부의 시선, 소리가   보다.


빗소리가 지난다. 오늘 내 곁으로 지난 시간들이 자꾸 찾아든다. 다시 만난 이 모든 게 여전히 반갑다. 그리고 고맙다. 나의 무심함에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주어 정말 고맙다. 소나기가 지나간다. 내 마음이 조금은 젖어 촉촉해지는 것을 느낀다.


소나기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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