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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20. 2021

혼잣말

친구, 화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공상가였다.

 

머릿속으로 온갖 이야기를 만들어서 혼잣말로 떠들고 다녔다. 무서움을 유난히 많이 탔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는데 그게 아주 어릴 적부터 습관으로 굳어졌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그 속에서 놀면서 자신과 대화하는 것을 나는 다른 사람 모두가 하는 줄 알았다. 혼잣말이 이상한 것이라는 것은 한참 나중에 알았다.


한국인이 스스로에 추임새로 혼잣말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나는 아예 나 자신과 토론을 벌이고 싸우고 웃고 화해한다. 난 남들도 다 이러는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 고등학교 다닐 때쯤 외삼촌 댁에 갔다가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안에서 웅얼웅얼하는 소리를 듣고 외사촌 동생이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길게 하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난 그런데 내가 화장실 안에서 혼잣말을 하고 있는 걸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하나의 대화를 나와 나누고 나면 나는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지적을 하면 그랬다는 것을 의식한다. 즉 어떤 상태가 On이 되면 자동으로 혼잣말을 시작해서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어떤 결론을 내면 Off가 되어 도출한 결론도 그랬던 사실조차 급격하게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다.


난 정말 다 이러는 줄 알았다. 그것을 의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외사촌 동생이 이상하다고 지적을 한 이후에는 그 행위를 나 역시 의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행위는 계속해서 제동이 걸리고 내 느낌을 말하자면 결이 꺼걸거리는 느낌에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난 어릴 적에 남에게 지적을 당해서 스스로에게 엄청난 상처를 입힌 적이 이미 있었다. 방학 때 친구에게 받은 지적 외에도 한번 더 전에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게 내게는 치명적인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래서 남이 나에게 뭐가 이상하다고 지적을 하면 그것에 대단히 방어적이고 민감하게 대응하는 체계가 생겼고 지적당한 행위를 피하는 것으로 최대한 심적 안정을 추구하려 하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혼잣말은 나를 진정시키고 내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가장 필수적인 장치였는데 그것이 막히면서 나는 심적 불안이 더 심각해지는 악순환에 빠진 것 같다.


지금도 길을 걷다 생각에 잠기면 가끔씩 혼잣말을 하지만 확실히 어릴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난 시골에서 친한 친구 2명과 당시에 유행하던 삼총사를 만들어서 어울렸는데 항상 같이 놀면서도 어느 순간이면 무리에서 빠져 혼자 걷고, 자전거를 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그냥 즐거운 기분이 되고 신이 나는 것이었다. 코스모스가 핀 길을 따라가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도 좋았고, 해 질 녘에 온 들판이 빨갛게 물든 모습을 보면서 자전거를 손 놓은 채 타면서 양쪽 논 쪽에서 내 자전거 소리에 반응해 개구리들이 크게 울어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했다. 또 마을 외각 쪽에 있는 동산 쪽을 타고 형성된 소나무 숲에 매년 황새가 무리로 날아와 그 주변을 하얗게 덮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나는 그곳에서 항상 자유로운 소년이었고 무엇을 하던 행복하고 즐거운 까불이였다.


그런데 부천에 올라와서는 조용하고 과묵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철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냥 주눅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시는 사방이 화려하고 차도 많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훨씬 많아 둘러볼 곳은 확실히 여러 곳이 있었다. 극장도 여러 군데 있었고 동시 상영하는 극장의 포스터와 영화 내용을 알려주는 여러 장의 사진을 보면서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내용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문구점마다 가득한 프라모델의 설명서를 살며시 구경하면서 나중에 학용품 한두 개를 사서 나오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뭔가 그때부터 가슴이 답답한 것이 있었다. 그나마 나에게 위안을 준 것은 하교하다 들어가는 오락실에서 친숙한 게임 플레이를 보는 것과 시골 학교의 큰 은행나무를 연상시키는 어떤 큰 나무 밑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앉아 있는 시간이었다.


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고향에 남겨두고 왔는데 그걸 어린 마음은 알지 못했다. 내가 방학 이후에 다시 고향에 간 것은 군대를 가기 위해 준비하던 시절인 것 같다. 그때까지 나는 일부러 더 고향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지우고 지냈던 것 같다. 그때 그렇게 소식이 끊어지고 친했던 친구 사이에 긴 공백이 있었다. 아직도 나는 그 시절의 친구들 모습이 떠오른다. 나만큼 작던 친구, 나보다 덩치가 조금 더 있고 통통하던 녀석..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그립고 궁금하지만 어리고 상처 입은 마음에 당시엔 모든 걸 그냥 그렇게 손에서 놓아 버렸다. 우정을 끊는다는 생각도 없었고 잃어버린다는 생각도 없이 정신없이 휘둘리다 보니 어느새 훌쩍 나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의 친구들에게도 미안하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 친구들이 안녕하기를 바라고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바란다. 지금이면 한참 학부모들이라 정신이 없겠지만 언젠가 그래도 다시 한번은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너무 무심해서 미안하고 언제나 내 안에서 따뜻하게 기억되는 추억으로 남아 있어 주어 고맙다. 정말 그 모든 기억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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