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기
몸살.
나는 이상하게 예전부터 무슨 변화가 있으면 꼭 몸이 반응을 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항상 변화의 중간 단계에 몸살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 몸이 무거워지면서 점점 가라앉는 기분이 들 때가 있고 이번처럼 몸은 아프고 힘든데 기분은 오히려 가벼운 경우도 있다. 나는 그래서 아픔과 고통에도 방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변화의 중간단계에는 항상 성장통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종종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하자만 그렇다고 모든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이 반드시 성장통인 것은 아니다. 성장하면서 느끼는 고통과 무언가 망가지면서 느끼는 고통은 확실히 방향성이 다르다. 그것을 잘 감지해내는 것이 인생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무조건 버티고 참아낸다고 어떤 상황이 무조건 익숙해지지 않는다. 자신과 기질이 맞지 않는 곳에서 익숙해져 가는 고통은 사실은 무기력일 가능성이 높고 그런 과정에 익숙해지면 몸도 마음도 서서히 망가진다.
난 스스로와의 자기 대화가 확실히 부족했던 모양이다. 무언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헛돌고 있던 것들이 점점 윤곽이 잡힌다. 그러면서 이제 무엇을 놓아주어야 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도 점점 분명해진다. 제한된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못하고 있었다. 미련이다. 그런데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고 지워질 것들이다. 엉키고 난장판이 된 것들은 이제 다 밖으로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그냥 깨끗한 바닥 하나를 준비해서 모든 것을 새롭게 정리하고 차근차근하게 해 나갈 것이다.
항상 무엇을 새롭게 그릴 빈 여백이 없었다. 나에게 글쓰기가 마음의 여백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글쓰기 자체가 아주 진솔한 자기 대화라는 것을 이전에는 왜 몰랐을까? 아마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써본 적이 없어서 일 것이다. 다른 주제와 남의 이야기 그리고 작품 해석 같은 것을 종종 했었지만 자기 이야기는 일기장을 쓰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본인 스스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자만했다.
머리에서 쌓여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가니 심적인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까칠하던 성격도 좀 더 수더분해진다. 내가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니 세상에도 좀 더 관대 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 과정에서 마구 굴렸던 몸이 이제 다시 회복하려는지 아프기 시작한다. 몸살이다. 항상 허리 뒤쪽부터 통증이 시작해서 몸 전체로 아픔이 퍼져나간다. 익숙한 통증이지만 이번엔 회복하기 위한 통증이라는 것을 그냥 느낄 수 있다. 요즘 점점 더워지는데도 잠들기가 봄보다 수월하다. 한 여름이라 그냥 있어도 덥지만 쌍화탕을 뜨겁게 데워 마시고 몸에 담요 서너 장을 덮어서 땀을 쭉 빼고 싶다. 그렇게 아주 깊은 잠을 자고 나면 몸도 마음도 훨씬 가벼워질 것 같다. 몸과 마음에 그동안 이런저런 독소를 너무 많이 쌓아두고 있었다.
해독작용이다. 이상하다. 정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너무 우스워서 나 스스로를 궁지로 몰았는데 그제야 위기감에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엉기적거리면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글을 쓰고 아직 전반적으로 상황이 나아진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이제 몸이 회복하는 대로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시절이라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는 것이 절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아픈 내가 대견하다. 이제야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하는 겁쟁이에게 격려를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