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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22. 2021

취향

인격, 인품

나는 지금 머리가 맑지 않다.


잔뜩 땀을 흘리고 이제 간신히 몸을 씻고 허기진 뱃속에 무언가를 넣은 다음 밤새 꿈꾸듯 어지럽게 돌아가던 머릿속 이미지들을 그냥 한번 떠올려 본다. 무엇을 보았는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정말 먼 길을 헤매듯 방랑하다 눈부신 햇살에 간신히 눈이 떠진 그런 감상이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머리는 멍하다. 머리가 맑지 않다.


잠을 자다 중간에 몇 번이고 깨어났고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잠에 취한 듯 꿈에 취한 듯 생각에 취한 듯 이상한 밤이었다. 허기가 지는 밤이었다. 속이 허하고 뭔가 힘들고 아픈 밤이었다.


취향. 그렇다 난 나름 분명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패션, 음식, 책, 생각에도 분명한 취향을 가지고 있고 좋아하는 사람의 타입도 분명하다. 그런데 그 취향에 취하여 내가 누군지는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어떤 패션이 내가 좋아하는 패션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패션 센스가 좋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체형에 대한 심각한 자기 인식이 없다. 그냥 검은색 계통의 옷을 심플하다는 이유로 많이 가지고 있지만 그런 옷들을 다른 것들과 어떻게 섞어서 입어야 하는지 옷으로 남에게 어떤 분위기를 전해줄 수 있는지 내가 입는 옷이 남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래야 한다는 것, 그것도 소통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내게 옷은 그냥 편하면 좋은 것이다.


남의 패션을 지적질할 수 있지만 나 스스로 스타일 있게 꾸며 입지 못하는 것이 나다.


음식, 난 소위 입이 짧은 편이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어릴 때는 비린 것을 아주 못 먹었고 나이 들어서 조금씩 비린 것을 먹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지만 역시 폭이 넓지 않다. 점점 가볍고 채소가 많이 들어간 간단한 음식을 즐기게 되지만 몸에 살이 잘 붙지 않는 나는 어쨌든 고기를 정기적으로 먹어줘야 한다. 그래야 활력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갈수록 왠지 손이 많이 가는 모든 음식이 귀찮다.


어쨌든 어떤 음식이 좋은 음식이고 내 몸에 맞는 음식인지는 나름 판별하는 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취향이 내가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세상에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지도 않는다. 그냥 내 혀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판별할 수 있고, 내가 몸에 넣었을 때 몸이 가벼워지느냐 아니면 한없이 무거워지면서 늘어지는지 주관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지 난 음식에 있어서는 완벽한 문외한이다. 무언가를 잘 잊어버리는 기질은 레시피 역시 아주 쉽게 머리에서 지워 낸다. 그러다 보니 내 요리법은 그냥 간단하고 편한 것들이 주가 되어버렸다.


책, 많이 읽는다. 꽤 많이 읽지만 아무것도 머릿속에 담아두지 못한다. 나의 독서는 꽤 힘이 들어간다. 나는 남들처럼 속독을 하지 못한다. 일단 빨리 읽게 되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럼 그 독서에서 내가 건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서 꽤 느린 속도로 이야기를 꼼꼼히 맛보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이것을 최근까지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다. 독서를 하고 나서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데 나는 왜 독서에 집착하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다. 그러나 한 권의 책에서 가슴속에 인상을 남긴 조각들은 계속 내 안에 남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현실에서 그 조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것은 그때 나의 경험을 통해 완전히 나와 결합하여 새롭게 이해되고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무언가를 욕심부린다고 가질 수 없다는 걸 최근에야 배워가고 있다. 나는 남들과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그 기질을 너무 예민하다는 이유로 싫어했다. 예민한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단지 내가 그 예민한 기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다. 남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냥 부러워했다. 그리고 그 부러움을 아무 생각 없이 흉내 내려 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꼬여 버렸다.


생각, 사람… 나는 선한 생각과 선한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나의 취향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선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보다 훨씬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 때론 전혀 엉뚱한 소리와 주장을 할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한참 헤매고 돌아다녔다. 선하다는 것과 무엇을 안다는 것 그리고 삶의 방향성은 모두 다른 개념이다.


남을 해치는 , 상처 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타고나기를 성격 자체가 그런 사람들이 있다. 회복탄력성도 좋아서 남의 이야기에 쉽게 상처 받지 않고 자기와 다른 의견에도 같이 응해주면서 듣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모든 이야기는 모든 경우에 참인 경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이야기가 어떤 경우에 참인지 그리고 예외는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는 고민하고 의심해 봐야 한다.  자신도 내가 믿을  없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상대의 생각과 변화에 의문과 의심을 가지는 너무나 당연한 것임에도 어느 순간 나는 의지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의심하는 것을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했다. 그리고 죄스러워했다.


그런데 그건 그냥 내 편한 대로 믿고 싶다는 나약한 마음일 뿐이었다. 그러다 믿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생각 없이 하는 말에 너무 크게 상처 입고 아파하는 바보 같은 실수를 매번 반복했다. 사람은 언제나 완벽할 수 없다. 생각과 글은 나름 많은 에너지를 부여하는 활동이고 논리라는 틀을 사용하여 진행이 되기 때문에 큰 오류 없이 하나의 흐름처럼 일관성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행동과 말은 다르다.


행동과 말은 많은 부분에서 반응이다. 그렇기 때문에 즉각적이며 본능적이다. 우리가 위협을 느끼면 말과 행동은 사나워진다. 그것이 그 사람의 본심이 아니어도 그렇게 반응은 튀어나온다. 그 사람의 감정의 흐름에 의해서 말과 행동은 항상 들쑥날쑥 하다. 감정과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일관성을 가진채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수행을 통해서 인격과 인품을 쌓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렇게 해왔는가? 난 나의 취향을 나의 인격이나 인품처럼 착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어딘가에서부터 나는 단추를 잘못 꿰고 있었다. 그래서 어긋난 그것이 내내 내 신경을 거슬렸다. 천천히 다시 단추를 풀어야 한다. 아무리 조급해도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 결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긴 꿈을 꾸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 같다. 분명 하룻밤의 여정이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긴 여정에서 무언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 아직도 취한 듯 몽롱한 기분이다.


몸이 무겁다. 허리 뒤쪽이 뻐근하고 오늘 저녁이 되면 아주 제대로 아플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솔직히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글쓰기가 이런 것인지 몰랐기에 이런저런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있다. 이런 무거운 기분과 머리로 글을 쓴다는 것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뭔가 지금은 그냥 해보고 싶다. 그래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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