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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24. 2021

상실의 시대

적게 사귀기

진실이라고 믿고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무엇이 부서져 나갈 때 우리는 상실감을 맛본다.


나의 6학년은 그렇게 내 기존 질서들이 하나하나 다 부서져 나가던 그런 시절이었다. 반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아이라는 자만심도, 반장으로 아이들을 지휘하던 자신감도, 재미있고 잘 놀고 재치 있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에 대한 우월감, 그것은 내가 육체적으로 허약하다는 나의 열등감을 감추어주는 유일한 방어막이었는데 그것이 모두 벗겨지고 나는 대도시에서 혹시나 나를 덮쳐올지 모르는 폭력에 항상 노심초사하는 겁쟁이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 그나마 시골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던 유대감마저 상실한 나는 그냥 얌전해졌다. 중성화 수술을 마친 애완견이나 애완묘처럼 더 이상 까불거리지 않고 외할머니의 말을 잘 따르는 것에만 열중하는 그런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 다른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내적인 욕구는 더욱 커졌다. 일단 친구가 필요했다. 많지는 않아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새롭게 사귄 친구 M과 함께 또 한 명의 친구를 만들었는데 그 아이는 학교 근처에서 분식집인지 식당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을 둔 아이였다. 그 집에서 떡볶이를 먹은 기억이 있는데 그게 파는 음식을 해준 것인지 아니면 아들 친구가 놀러 와서 그냥 만들어 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시골에서 그랬던 것처럼 부천에서도 삼총사를 결성했다. 그렇게 하나의 모임이 만들어지자 나는 다시 심적 안정을 찾았는지 그 이후로는 새로운 놀이를 찾는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학 온 이후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만들어서 같이 노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야기를 제일 많이 안다는 자신감이 사라졌다. 시골에서는 2층에서 잠깐잠깐 개방되는 학교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이야기 감을 찾았다. 아니면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에 있는 비디오 가게의 각종 포스터들, 특히 무협비디오와 관련된 포스터들을 참조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 했는데 그때에는 비디오 기계를 본 적이 없어서, 비디오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던 나는 가게 밖에 붙여진 이야기가 그냥 너무 근사하고 멋지다고 느꼈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이소룡 게임과 결합하여 각종 이야기를 만들어서 아이들과 놀던 것이 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던 것이 부천에 올라오니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시골에서는 한번 붙은 비디오 포스터가 일 년이 다 지나도 바뀌는 법이 없었지만 부천에서는 극장에서 새롭게 상영하는 영화가 매번 올라오고 비디오 가게도 훨씬 많아서 과거에 하던 방식으로 아이들의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아이들이 보는 잡지도 많고 심지어 학습서의 종류도 많았다. 각종 괴물 백과에서부터 시골에서는 본 적도 없는 만화영화와 그와 관련된 스토리들 그리고 우뢰매, 울트라맨까지 이야기는 다양하게 넘쳐났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당시 맥가이버 이야기가 한참 유행했는데 외할머니는 부천에 올라온 이후 형 공부가 방해된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티브이 시청을 허락하지 않아서 내가 아는 티브이 프로는 시골에서 보던 ‘전격 Z작전’의 키트와 에어울프뿐이었기에 나는 티브이가 아닌 다른 곳에서 나만의 이야깃거리를 찾아야 했었다.


그때 나의 구세주는 새롭게 사귄 M 군이었다. 그는 건담의 모든 것을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나는 그때까지 건담이 뭔지도 몰랐다. 시골에서 프라모델로 한번 접해보기는 했지만 중간 부분의 코어 파이터가 분리된다는 것 말고는 그렇게 신기할 게 없는 로봇이었고 스토리를 전혀 알 수가 없었기에 내게는 그냥 시시하고 허리가 유난히 허약한 장난감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M군은 무려 더블 제타 건담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들어있는 작은 책자들을 시리즈로 가지고 있었다. 각종 기체들과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기존에 내가 즐기던 스토리들과는 레벨을 달리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나는 당연히 그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단 3명뿐이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건담과 다른 스토리 그리고 오락실을 들락거리는 재미는 그나마 내 안에 생겨난 큰 상실감을 간신히 메워주고 있었다. 친구 M은 미술에도 관심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며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듯 교양으로 배우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림도 곧 잘 그렸다. 나도 그때 그 친구의 영향으로 이런저런 캐릭터의 그림을 그리고 어려운 건담의 디자인을 베껴 그리기 위해 노력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에도 조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이 흔들리는 나의 내면을 그나마 잠잠하게 눌러주고 있었지만 그래서 그랬는지 더 시골의 아이들과의 연락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늦가을쯤에 새롭게 사긴 친구 N이 이사를 갔다. M군과 N군의 집을 오가며 노는 것이 내 즐거움의 큰 부분이었는데 그리고 내 불안을 잠재워주는 큰 위안이었는데 그렇게 순식간에 또 한 명의 친구를 잃게 되자 난 당시에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 이유일까? 난 이후부터는 다시 삼총사를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놀지 않았고 오직 친구는 M군 한 명만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친구들을 폭넓게 사귀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난 어느 순간부터 친구를 사귀는 폭이 너무나 좁아졌고 그게 편해졌다. 무엇을 상실하는 아픔은 언제나 나에게는 큰 슬픔이다. 그 슬픔을 덜 겪기 위해서는 더 적은 친구를 사귈 수밖에 없는 나의 슬픈 회피 기제는 이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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