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보다.
며칠을 아프고 나니 뭔가 또 리듬이 묘하게 어긋나 있다.
시간을 감각하는 것이 평소와 조금 다른 느낌이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것을 실천할 에너지는 부족하고 결국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시간과 에너지 두 가지가 내게 무엇보다 부족한 유한 자원이다.
평소 마음이 가라앉아 있을 땐 하고 싶은 것이 크게 없었기에 나 자신의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지쳐 쓰러져 잠드는 형태가 아니면 언제나 잠을 설치고 얕은 잠을 자다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그렇게 빨리 집중력과 체력이 떨어져도 그것이 잠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오히려 안도하고 있었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이제 그것에 열정을 쏟아붓고 싶다고 느끼고 그렇게 행동하기 위해 조금씩 생활의 리듬이 바뀌기 시작하자 나 자신이 얼마나 방종한 생활을 해왔는지 여실하게 깨닫게 된다.
턱없이 부족한 체력 때문에 모든 것이 다 틀어져 있다. 그럼에도 일단 꾸준히 글은 쓰려고 한다. 이것을 놓아버리는 순간 나의 생활의 중심이 되어줄 큰 기둥이 그대로 사라진다. 당장 좋은 글을 쓰려는 욕심은 접고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바탕으로 글쓰기를 활용하려고 한다. 나의 글쓰기는 어떤 생각에 꽂혀 그냥 써 여지는 글이 있고 곰곰이 나를 점검하는 글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특정 생각에 꽂혀 업이 된 상태로 쓰이는 글이 훨씬 부드럽게 써 여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글은 내 머릿속의 이미지가 완전하게 글이 되는 느낌이 아직 아니다. 항상 글을 쓰고 나중에 보면 뭔가 중요한 부분이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다시 보는 것이 힘들다.
그에 비해 나를 점검하는 글은 나의 방향성이다. 지금의 나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노력하는 글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기분파이다. 열정이 나를 끌고 갈 때에 나는 아주 쉽게 모든 일을 해낸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무엇을 할 때도 그 속에 열기가 더해지면 나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아주 왕성하게 해낼 수 있는 타입이다. 하지만 그만큼 반작용도 크다. 무언가 마음이 어긋나는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조정하는 능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단순히 나의 반골 기질 비슷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냥 나의 세계관이 너무 좁았고 그 좁은 세계관을 고수하면서 너무 내 고집만 부린 것이었다. 기분이 아니라 좀 더 성숙한 태도를 가지고 체계를 갖춘 행동양식을 수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며칠을 아프고 나니 스스로의 체력과 집중력이 매우 부족하여 글을 꾸준히 쓰는 것 하나만으로 하루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거의 반을 소비하는 느낌이 든다. 기존에 하던 공부나 그 밖의 활동을 다 새롭게 조정해야 하며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일단 무엇보다 먹는 것, 운동, 글쓰기, 잘 자는 것이 핵심이 되는 생활을 만들어 가야 한다. 정보의 습득은 일단 후순위로 미루어 둔다. 생활은 아주 단순하게 할 것이며 무엇보다 무리하지 않을 것이다.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저것을 덕지덕지 붙여서 무언가를 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을 과감하게 포기한다. 여기서 무엇이 더 나빠진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쨌든 지금은 주위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요청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어려울 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이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래서 남은 도와주면서도 나 스스로는 항상 혼자 버티는 것에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나의 성장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내게는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이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다. 그렇게 해도 더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꼼짝 못 하게 하는 무기력은 도움을 요청하면 주변이 나를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그 알 수 없는 불안감에서 시작된 공포가 너무 크게 자라나 버린 것이 주요한 원인인 것 같다. 결국 모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트라우마 상황 자체를 자주 겪고 경험하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잔소리는 더 심해질 수 있고 걱정도 많아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상상하는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혼자 잘 해내면 그게 지금의 나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난 지금 주변과 좀 더 마음으로 연결되고 싶다. 내가 약해져 있다는 것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지금은 제일 중요한 나의 과제이다. 혼자 무엇을 하기 위해 꿈틀 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건 나 스스로를 믿는 신뢰이다 그리고 주변에 대한 신뢰이다. 항상 나에게 제일 힘든 일은 주위에 약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죽기보다 싫은 그것을 해서 일단 새로운 발판을 놓자. 그리고 하루하루를 차분히 쌓아가자. 일단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잠시 내려놓자. 그리고 정말 넘어지는 법부터 새로 배우자. 항상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추락’에 대한 공포를 이제는 차분히 살펴볼 때가 되었다. 넘어져도 괜찮다. 다시 일어나면 되는 거니까. 그러니 억지로 버티지 말고 이번에는 아주 잘 넘어지고 쓰러져보자. 지금은 그럴 시간이다. 과거의 내가 아니라 지금 현재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내면에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성찰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