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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26. 2021

기질

받아들이다.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인지하고 받아들이기.


나는 분명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것에 좋고 나쁘고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을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고 그래서 내 기질을 내가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다. 단순히 흥미를 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이런저런 모든 것에 이 유한한 자원을 낭비할 수 없다.


내가 스스로 중독에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 자극에 아주 쉽게 반응하는 기질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극을 쫓는 반응도 사실은 불안을 해소하고 감추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스스로 진짜 좋아하는 주제는 아주 깊이 파고들어도 허무감을 느끼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 하지만 불안을 감추기 위해 몰두하는 피상적인 자극에는 곧 실증을 느끼고 어느 정도는 그냥 의무감에 또는 생각 없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불안과 스스로에 대한 불신 그리고 병적인 완벽주의에 의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 이것들은 나의 기질을 잘못 다루면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나는 이미 오랜 시간 내적 불안을 아무 생각 없이 키워왔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균형 감 없이 불안을 키운 이후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갖은 자극에 몰두하는 버릇을 들인 것이고 그것에 의해 스스로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렸다. 지금에 와서 보니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그냥 멈추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냥 멈추는 순간 불안이 내 안에서 꿈틀 된다. 그 불안을 차분하게 응시하고 이것이 하나의 습관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조차 힘이 든다. 너무 덩치가 커져 버린 불안은 그 자체로 나를 아주 심하게 압박한다. 현실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이 불안과 결합하는 순간부터는 나는 그냥 패닉에 빠져 버린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그냥 아무거나 붙잡고 두서없이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무언가에 몰두하여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 나는 불안을 아주 잠시 동안 잊고 바로 이야기 자체만 쫓아서 정신없이 달려들게 된다.


멈춤과 계획 그리고 느리게 가기.


억지로 무언가를 하게 하려는 것. 나는 그런 것에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에게도 싫은 것을 억지로 하게 만들면 반드시 탈이 났다. 그런 걸 알면서도 좀 더 부드럽게 나 자신을 설득하고 달랠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 같다. 그냥 결정하고 결심하면 참고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윽박지르고 있었지만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가 얻어낸 것이 무엇인지?


나의 무의식은 윽박지른다고 나에게 협조하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심적 불안감만 커져서 나 자신의 정신을 다른 쪽으로 유도하여 자극적인 것에 취하도록 만드는 상황이 많고 나는 그런 꼬임에 아주 쉽게 빠져 든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자극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 빠져든 중독과 패턴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게 된다. 결국 무엇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에 나의 의지보다 무의식이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적어도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멈추는 것은 나의 의지로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매번 자신에게 물어보자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 정말 중요한지 아닌지를 말이다.


나는 너무 즉흥적이고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기질을 가지고 있다. 구속되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어떤 것에 구체적인 틀을 갖추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성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건 어찌 보면 어리광이다. 아무리 싫어도 이제는 구체적인 계획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래서 항상 계획보다는 그냥 흐름과 평소의 패턴을 쫓아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로 인해 내가 내 행동에 대한 주도권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도 인정하자.


빡빡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나의 기질에 맞지 않다. 대신 모든 것을 하지 않는 것을 기본값으로 하고 대신 꼭 필요한 몇 가지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방식으로 생활의 구조를 바꾸어 나가자. 나는 나와 대립하고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 기질을 제대로 제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을 이제부터라도 새롭게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내가 주도적으로 나의 기질을 이용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되지 않아서 내 안에 쓸데없는 불안이 너무 커져 버렸고 그 불안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잡아먹으려는 듯이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있다. 몸과 마음에 증세가 나타나는 상황이라면 절대 가볍게 여길 상황이 아니다.


대신 좀 느리게 가자. 항상 조급하게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하다가 근본적인 부분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나는 현재 심적으로 불안하고 체력과 내적 에너지는 차분히 기초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한다. 글쓰기와 운동을 제외하고 나면 하루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과 집중력은 이미 반토막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것저것 여유를 부리면서 살펴볼 상황이 아니다. 무엇이든 딱 하나만 더 골라서 착실하게 하자. 모든 걸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 그리고 심플한 계획과 실행력. 지금 내게 제일 필요한 것들이다. 나랑 더 이상 싸우지 말고 잘 어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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