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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27. 2021

숨쉬기

바탕 점검

갑자기 숨 쉬는 것이 힘들어지는 느낌이다. 이게 뭘까?


아마 내가 내 속에 있는 불안을 감지하기 시작하면서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원인이 있어서 불안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불안은 그냥 감각이고 외부에 대한 감지 기능이다. 그것이 나의 의식과 묘하게 결합하여 거대한 실체처럼 내 안에 존재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실제보다 훨씬 세상을 민감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멈춤 버튼을 눌렀더니 무언가를 하지 않는 순간이 그 자체로 불안이 되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상태로 그 불안을 그냥 조용히 응시해 본다. 호흡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허파 끝까지 숨을 끌어당겨 보지만 여전히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하루 이틀 사이에 이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이 상황 자체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멈춘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내 안의 감정 그 자체만 계속 응시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왜 몰랐을까? 내가 키운 불안이라는 녀석의 덩치가 너무 커서 지금 현재는 나랑 체급이 아예 맞지 않는가 보다.


이 녀석을 당장 이겨 먹을 생각은 없다. 그냥 지금은 간 보기만 해 보는 것이다. 간 보기만… 가슴이 답답하고 역시 숨쉬기가 쉽지 않다.


일상은 그 자체로 분주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마음먹었음에도 일어나서 가벼운 운동, 식사 준비, 씻기, 식사, 방 정리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하지 않은 하루의 밑그림을 그려보는 활동만으로 나는 이미 지쳐버린다. 그리곤 제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몸의 삐걱거림을 점검해보고 조용히 자기 대화를 시도해 본다.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그만두고 일어나는 모든 이미지를 해석하지 않고 그냥 계속 내버려 둔다. 무언가 무수히 많은 것들이 나의 내면을 스쳐 지나간다.


어린 시절 느린 열차 속에서 일정한 속도로 지나가는 풍경들은 그 자체로 이야기다. 하지만 현시대에 고속열차에 올라타 앉은 순간 내 옆을 스치는 무수한 이미지들은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정보가 너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그것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려는 시도가 번번이 무산될 때마다 내가 초조함을 느끼는 것을 알겠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나는 불안을 느낀다. 불안이라는 녀석의 지분이 너무 커져서 이 녀석이 조금만 움직여도 나의 내면세계에서는 지진과 재난이 일어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안을 정말 묘하게 자극하고 있다.


나는 나의 불안과 싸울 생각이 없다. 단지 이 녀석이 너무 비만하기 때문에 같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할 뿐이다. 불안 자체가 나를 망가뜨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냥 세상을 인지하는 하나의 감각일 뿐인데 그것이 너무 비대해져서 제기능을 하지 못하니 같이 이야기 좀 하고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넌지시 한 번 찔러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조용히 다가가 보는 나의 내면은 너무 난폭하고 거칠고 애처로울 만큼 겁이 많다. 그동안 나 스스로의 학대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의 형상이다.


녀석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그냥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허파 끝쪽이 찌르르하고 아프다는 것을 느낀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갑자기 요동 친다. 내가 나한테 그동안 너무 많은 사기를 쳤는가 보다 그냥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 슬쩍 보려고 하는 것만으로 이토록 난리가 난다는 것은 나와 나의 무의식의 관계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오래된 부부가 어느 순간 대화가 사라지고 불만이 쌓여가지만 그 관계가 너무 오래되어 무엇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상태, 차라리 부부라면 황혼이혼이라도 할터이지만 나는 나의 내면과 갈라설 수 도 없다. 숨을 쉬는 것이 어렵다. 마치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한다. 솔직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면서 불안하다. 그래도 해야 한다는 것은 안다. 누구도 이 과정에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냥 좀 더 많이 만나보고 익숙해질 때까지 욕심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전신이 땀 투성이다. 씻고 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살아는 가야 한다. 이상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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