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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내면에 얼마나 강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을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개인은 내면에 얼마나 거대한 인간 존중감을 가지고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힘이 든다. 나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이루고 싶은 욕심도 없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열의 자체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인간을 상대할 때마다 내 자신이 마모되는 것을 느낀다.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어울림 자체에 익숙해지면 나라는 정체성이 무디어지는 감각이 생겨나는 것이다.
많은 것을 이룬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 모두에 진실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천성적으로 인간 하나, 하나에 연민을 품을 수 있는 성자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연결과 소통을 도와주면서 행복감과 사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내적 에너지는 크지 않다는 것이 나의 경험 상의 결론이다. 즉 내가 인간으로 그리고 나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나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주위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느낀다.
아무 의미 없는 반복적 접촉과 인사말 그리고 영혼 없는 말들에 익숙해지는 순간부터 나는 그냥 작동하는 기계가 되어버린다. 어떤 역할 그리고 살아내는 의무와 무엇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이 세상에 존재할 뿐, 느끼고 생각하고 반응하며 나와 다른 그렇지만 그래서 소중한 타인과 소통하는 하나의 독립된 자아로서 세상에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자는 아니게 되는 것. 나는 그런 것이 마모되는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사회화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또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주위에서 말들을 하지만 내게는 그냥 영혼의 소비처럼 보이는 일상의 생각 없는 몸부림. 깊이 없이 그냥 보통의 무엇이 되는 것에 열중하는 것, 열심히는 살지만 그럼에도 허기지고 한없이 지쳐 보이는 어떤 것… 내게는 그런 게 마모되는 느낌이다.
무언가 모난데 없이 둥글둥글하고 자그마한 그 느낌이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삶도 분명히 어울림의 한 형태이고 그렇게 살아서 행복한 사람은 그것 자체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난 그게 기질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사람을 상대할 때 너무 진지하거나 아니면 너무 거리를 두고 경계하고, 상처 입는 것도 상처 주는 것도 싫고 상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내적으로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 타입이다 보니 무조건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하는 것이 내게는 항상 좋은 결과를 남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점점 나이 들어감에 따라 내가 도시인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도시 속을 누비면서 많은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 적은 사람들과 깊게 교류하는 것을 즐기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보다는 내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여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 그것에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는 나는 한없이 약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완전히 ‘아싸’인 것이고, 내가 그런 ‘아싸’라서 오히려 만족스럽다.
결국 내가 좀 이상한 녀석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왜 내가 될 수 없는 세상의 보통이 그렇게 힘들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와 다른 세상에 날카롭게 날을 세울 이유도 없어진다. 내가 이상한 것이다. 내가 희귀종이다. 그러니 세상의 기준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따라가서 행복해지려는 몸부림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기질에 맞는 나름 충실한 삶을 그냥 살아가면 된다. 남을 해칠 생각도 없고, 다른 사람의 생활방식을 이상하다고 비판할 이유도 없다. 그냥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나한테 맞는 나의 방식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 마모된다고 느낀다. 내가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경험을 무조건 많이 하는 것도 이제는 사양한다. 이상한 것들은 그냥 이상하다고 느끼고 그렇게 죽 생각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내 기준과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남들과 비교하고 자꾸 비슷하게 꾸미려고 하니 결국 탈이 생기는 것이다. 눈치 볼 것 없이 나의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쓰기는 남과 비슷해지고 같은 것을 느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의 생각을 남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세상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생각이 있다 그것이 다 비슷해지고 같아야만 할 이유는 없다.
산업화의 한 복판을 지나온 우리 세대는 규격화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 규격대로 누가 가장 높은 효율을 발휘하는가가 인간을 평가하는 주요한 잣대가 되었고 우리의 내면은 그것에 아주 잘 길들여져 있다. 내가 하는 생각이 혹시라도 규격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라는 자기 검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우리 세대에 얼마나 있을까? 나는 남을 해칠 생각이 없다. 그것을 전제로 나의 내면에서 좀 더 자유롭게 생각을 풀어놓고 방목하고 싶지만 과연 그것이 나의 남은 생애 동안 가능한 일일까? 좀 더 두서없고 엉망인 글을 써도 상관없다. 이건 나 자신의 자기 검열을 무력화하기 위한 내 나름의 처방이니 말이다.
인간성의 마모. 자기 개성의 소멸… 내게는 같은 의미로 읽힌다. 지금의 나는 나다운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편안해지기 위해 그리고 튀지 않기 위해 난 지금까지 무엇을 제물로 바치고 있었던 것일까? 글을 쓰다 보면 나다운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그냥 생겨난다. 그런데 나다운 글이 뭔지는 모르겠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진지하게 바라본 적이 있었나? 항상 어떤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에, 틀에 맞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왔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완벽주의라는 환상에 불과할 뿐 있는 그대로의 나는 아니다.
엉터리인 나를 좀 더 드러낼 필요가 있고 그런 나를 닮은 글도 그냥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나는 현재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혼란과 번잡함을 간결하고 일목요연하게 서술할 수 있는 재주가 없다. 그러니 억지로 꾸미려고 하지 말고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글을 쓰자. 그리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날 것 그대로의 나를 좀 더 진지하게 대면하자. 분명 내가 더 깊게 이해해야 할 나의 이야기가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르니 그것을 찾아내어 깊게 파고들어 보자.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도 멍한 가운데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써 본다. 이 글도 나중에 읽기가 힘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