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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피터 Jul 29. 2021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도대체 언제부터였던 것일까? 내가 형과 비슷한 부류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어릴 때 아버지의 관심을 더 많이 받고 싶은 욕심에, 형에게 지기 싫은 오기에 정말 많이도 아웅다웅했다. 그 무수한 싸움이 나를 형과 비슷하다고 착각하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정말 내가 형을 맏이로 인정한 그 사건이 너무나 크게 내 안에 각인되어 그 이후로는 그냥 둘이 똑같다고 믿어버린 것일까? 공부 잘하는 형을 모방했고, 그 이후로는 왜 그토록 형과 똑같은 길을 바보처럼 고집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나와 형은 이제 보면 닮은 구석이 하나 없는데 말이다.


우리 4형제는 모두 제각각이다. 성격부터 기질까지 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데 그런데 나는 왜 나를 형과 같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눈이 앞만 보도록 되어있어서 난 그냥 내 눈에 비친 형의 모습을 거울처럼 인식하고 살아왔나 보다. 아! 밥벌이…


어릴 때부터 문제는 항상 이 놈의 밥벌이였다. 아버지는 문과에 가서는 밥 벌어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그 말을 너무 자주 하셔서 마치 모태신앙처럼 내 안에서 그것이 믿음이 되어 작동하고 있는 걸 나는 몰랐다. 나는 내 생애 내내 이야기를 가지고 놀면서 살았는데 그건 그냥 내 놀이일 뿐 커서는 무언가 돈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 밥벌이를 하려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 내 머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가 아니면 이해를 못하고 이야기가 아니면 기억도 못한다.


난 딱딱한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 엄청 떨어진다. 철학에 관련된 책을 봐도 관념어들이 죽 늘어서 있으면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인지는 해도 이해는 하지 못한다. 머릿속에서 굴러가지가 않으니 당연히 기억하지도 못한다. 내가 무엇을 배우는 방법은 이야기 형태로 서술된 것을 죽 읽어서 전체적인 틀과 세계관이 머릿속에 자리가 잡히면 이후에 그 세계관에 맞추어 머릿속에서 굴러갈 다른 요소들을 하나, 하나 추가해서 각종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노는 것이다. 이렇지 않을까? 저렇지 않을까? 하는 온갖 망상이 쏟아지도록 하면서 이해를 점점 넓혀가는 것이 나의 학습 방법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많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딱딱한 단순 암기과목들이 내 체계 안으로 들어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중학교부터 어떤 개념의 이해보다 그냥 암기를 하고 암기된 공식을 이용해서 답을 찾는 교육이 계속되면서 나의 이해도는 갈수록 떨어졌다. 그래서 단기간에 벼락치기로 모든 시험의 승부를 보아야만 했었다.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의 휘발성은 정말 강했다. 이야기를 만들면서 노는 뇌는 모든 정보의 틀을 자꾸만 분해한다. 그래서 이야기 체계로 내 안에 완전히 흡수되어 계속 반복 활용되지  않는 모든 정보들은 아무리 잡으려고 애를 써도 내 머릿속에서 정보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사라져 갔다. 그런 정보를 잡고 있으려면 같은 정보를 보고 또 보고 또 봐야 했다. 반복 숙달만이 정보의 전문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나의 노력이 항상 부족하고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내가 근성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형은 잘하는데 나는 왜 안될까? 이게 나의 궁금증이었고 그리고 열등감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너무 많은 망상을 만들면서 놀고 있었다. 내 머리는 원래 그렇게 작동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지 못한 수학의 공식들의 바다에서 헤매다가 이과인 공대를 가보니 전공서적이 모두 한자와 영어 범벅에 도저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었고 교수들의 수업도 당연히 너무나 딱딱했다. 난 그들이 정상이고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내가 낙오자이자 패배자인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심정을, 참담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모든 것에 흥미가 없는 척했지만 그냥 멘붕이 온 것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 도서관에서 그냥 소설만 읽었다. 전공 서적은 아무리 봐도 내가 싸워볼 그런 녀석이 아니었고 체급 차이가 너무 나서 바로 꼬리를 내리게 되는 그런 상대였다. 그냥 그 전처럼 벼락치기만 잘하게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유튜브, 그리고 모든 책들이 이야기 형태로 풀어서 서술이 된다.  정말  전공과 관련된 동영상 영상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게  일이야? 이런 심정으로 관련 동영상을 한참을 봤다. 그들은 개념을 이야기하고 기본적으로 세계관과 틀을 잡을  있는 설명을 아주 친절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그것이 조회수를 높이고 그들의 수익을 올려주는 구조이다 보니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내가 전보다 폭넓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있는 것은 근래는 모든 책들이 기본적으로 이야기 형태의 정보전달을 기본 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이것은 시대의 혜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단순 암기에는 약점이 많다. 사람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어렵고 어휘 증가가 상당히 더디게 이루어진다. 영어 공부를 해도 독해를 통해 정보를 해독해 내는 것은 잘하는 편인데 입으로 발음하고 말을 하는 것이 항상 너무 어렵다. 일단 영어로 생각이 안 된다.  영어로는 머릿속에서 아무런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서는 항상 이야기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가 힘 약한 영어를 못살게 굴어 아예 자라나는 기회를 주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물론 집중해서 계속하면 늘어난다. 문제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두 달만 공부를 멈춰도 나는 영어를 말하는 감각이 완전히 내 안에서 사라져 버린다.


시간은 한정적인데 사라지는 감각을 붙잡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달려야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 절망감과 항상 싸우다가 무너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 이상 정보를 머릿속에 잡아두는 것을 포기했다. 지워지는 정보는 지워지게 그냥 두자고 생각했고 그 이후 여러 정보들이 머리 안에서 마구잡이로 섞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느끼게 되면 어느 순간 상대의 말과 이야기에서 결이 툭툭 튀는 것을 감각할 때가 있다. 내가 구축한 이야기의 세계 즉 내면세계의 질서와 상대가 이야기하는 것의 방향성이 맞지 않으면 결이 튀는 걸 감각하면서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게 뭔지를 첨에는 알지 못했다.


아주 최근까지도 솔직히 알지 못했다. 그것은 세계관이 부딪치는 것이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한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면 다른 작가의 작품은 보지 않고 그냥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는 것을 더 선호한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인 모양이다. 이럴 때는 나의 세계관을 훨씬 넓게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나를 ‘정의’ 또는 ‘옳은 것’으로 고집하는 순간 나와 다른 세계관은 틀린 것이 되어 상당한 거부감이 생겨나기 때문에 언제나 중요한 것은 나를 그냥 하나의 의견 또는 취향으로 인식하는 것이 그런 부작용을 줄일 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것을 내재화 한 시간이 너무 짧은 관계로 나는 여전히 싸움닭처럼 나와 다른 것에 맹렬하게 반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형은 나와 이런 특성을 전혀 공유하지 않는다. 형은 가장 일반의 사람이다. 그리고 전문가 타입이다. 그런데 그런 형을 나와 동일시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정의해 왔다는 것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는 정말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냥 딱 봐도 이상한데 이상한 걸 몰랐다. 이게 어릴 때 생기는 각인 효과라는 것일까? 어쨌든 난 지금까지 나를 형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부분이 너무 많다. 그래서 잠시 멈춤을 선언한 지금 계속 과거와 현재의 내가 미묘한 지점에서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허무하다. 소크라테스가 일찍부터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그 말을 난 도대체 어디로 듣고 있었던 것일까?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 중 많은 부분은 허구일 것이다. 이런 것도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타인의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흉내 내는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을 보고 있을 뿐인 것일까?


너무 많은 생각들을 그냥 풀어나 본다. 정리는 어차피 되지 않을 것을 안다. 이 정리되지 않을 것들이 너무 많이 내 안에 쌓여있었다. 그래서 여기에 그냥 내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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