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캔
하루가 끝나간다. 지금은 그냥 휴식이 절실한 것 같다.
아는 동생이 급하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작은 원룸을 옮기는 일이니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갑작스레 차편이 마련되어 적은 비용을 들여 이사를 하겠다고 서두르다 보니 손이 부족해져서 내게 연락이 왔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기에 가끔씩 시간이 나면 만나곤 했던 아우가 떠난다니 좀 섭섭했지만 급한 대로 가서 일을 도와줬다.
요즘은 간단한 이사를 해도 다 이삿짐센터를 이용하는 터라 어딘가에서 얻어온 듯한 종이박스에 짐을 차곡차곡 분류해서 넣고 그것을 3층에서 차가 있는 아래층으로 다 내리고 싣는 일들이 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되었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방에서 짐을 챙기고, 코로나 시국이라 번거롭지만 마스크를 쓴 채 이 모든 일을 하려니 땀이 차고 숨도 가빠진다. 그래도 남자 둘이서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 4시간 만에 웬만큼 일이 끝나버렸다. 포터 짐칸에 종이 박스를 십여 개 옮기고 가구와 집기들을 다 실어 일을 마무리하고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근처에 아는 중국집으로 차를 몰고 나갔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요즘은 원래 그런 것인지 정말 사람이 없어서 휑한 느낌마저 드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간단하게 식사를 주문했다. 더운 날에 땀을 빼서 그런지 입맛이 영 없는 가운데 나는 짬뽕을 주문했고 동생도 같은 걸로 통일했다. 뭔가 오랜만에 만나서 마주하고 있지만 그것이 갑작스러운 이사가 되었고 이제 헤어지면 얼굴 보기가 힘들 것이라는 느낌 때문인지 식당에 들어서고도 내내 대화가 적었다.
사는 것이 다 조금은 팍팍한 듯했다. 일이 없어서 일 따라 지방을 돌아다니는 상황도, 서울 쪽의 아내와 떨어져 주말부부 비슷하게 생활하는 현 상황도 답답한지 꺼내는 이야기들이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냥 조금 지친 듯 보이는 아우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지만 이게 어쩌면 가장 일반적인 현대 가장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여유는 없이 팍팍하게 돌아가는 일상과 보고 싶지만 자주 보지 못하는 자식과 아내 그리고 잘 풀릴 듯하다가 코로나 시국 이후로 모든 것들이 꼬여버린 사업계획 등 마음에 담긴 불안과 울분 같은 것들이 갑자기 터진 듯 쏟아져 나왔다.
우린 이야기가 길어져서 중국집을 나와 카페로 자리를 옮겨 서로 간의 속사정을 나누었다. 그래도 답답했던 속내를 털어놓은 덕분인지 이야기를 마친 아우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가서 정리할 것도 많고 또 다른 일들도 처리해야 하기에 이만 작별을 해야겠다고 하면서 오늘 도와줘서 너무 고마웠다는 아우는 가까운 시일에 한번 제대로 대접을 하겠다면서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답답하고 힘들어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격려해 주었다.
갑자기 일정에 없던 일과가 생겨서 오늘 하루는 조금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도서관에 빌린 책을 반납하고 햇살이 좀 약해진 저녁 무렵에 가까운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했다. 뭔가 오늘 하루 이상하게 허전하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가까이 지내던 사람 한 명이 또 멀리 가버렸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이런저런 생각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번잡함때문일까? 마음이 왠지 모르게 울렁거린다.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땀을 빼고 돌아와서 샤워를 마친 것만으로 몸이 나른해진다. 모든 것을 다음날로 미루고 일단 그냥 쉬고 싶다는 유혹이 몰아치는 와중에 그래도 하루치의 글은 쓰고자 자판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별것 아닌 일들이 오늘 있었고 글을 쓰는 중에도 별것 아니라고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그 자체로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 것 같다. 나보다 어쩌면 더 서글플 아우가 모든 정리를 잘 마치고 이제는 편안하게 쉬면서 원하던 대로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있기를 바라본다. 아! 갑자기 나도 맥주 한 캔이 무지하게 당기는 그런 밤이다. 나른하고 지친 그렇지만 뭔가 그리운… 사람이 그리운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나누는 마음이 그리운 것 같다. 맥주 한 잔이 몹시 당기는 그런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