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거래도 믿을 수 없다
앞서 부동산 중개앱을 통해 사진만 보고 찾아갔다가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나는 직거래 플랫폼으로 유명한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 카페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중개료를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고객을 현혹하는 허위 매물은 적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직방이나 다방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적혀 있고, 비교적 실물에 가까운 사진들이 올라와 있기에 현실적으로 평가를 내리기에도 적절해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 계약기간 만료 전 세입자들이 이사일을 내걸고 집을 내놓다보니 집이 마음에 들더라도 일정을 맞추기 어렵거나 풀옵션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사실 집을 구하면서 가장 살고 싶었던 동네 중 하나는 홍대와 상수 인근이었다. 신촌에서 가까울 뿐만 아니라 각종 맛집과 핫플레이스, 게다가 로컬 공연장까지 군데군데 모여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살기에는 최적의 장소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상권이 발달한 곳인 만큼 시설에 비해 집값이 터무니없이 높았고 내 조건을 충족하는 집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러던 중 카페에서 요즘 핫하다는 ‘망원역’ 근처의 3룸을 반전세로 구한다는 게시글을 보게 됐다.
6천에 50, 망원역에서 도보 5분, TV, 에어컨, 세탁기까지 원하는 대로 옵션 다 줍니다.
사진이 없어 조금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조건이 꽤나 괜찮아보였기에 큰 고민 없이 집주인에게 연락을 취했다.
"혹시 보증금을 높이고 월세를 줄일 수 있을까요?"
"얼마를 원하시는데요?"
"1억에 2~30만 원 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가능한 원하는대로 맞춰줄테니까 일단 집을 보러 오세요. 집은 아주 좋으니까."
집주인은 꽤나 호탕해보였고 잘만 부탁한다면 나쁘지 않은 반전세 조건에 망원동 3룸에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게다가 네이버지도에 기재된 주소를 검색해보니 건물이 꽤 세련되어 보였다. 앞선 경험에 따르면 크게 기대하지 않아야 실망도 적은 법이지만 나는 또다시 부풀어오르는 새로운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이번엔 정말 괜찮은 집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집을 보러 가는 길,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근처 편의점에서 생수 한 통을 사 벌컥벌컥 마신 뒤에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해당 건물에 도착했을 때는 나는 (놀랍지 않게)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분명 지도 사진에서는 꽤 괜찮은 건물로 보였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대로변에 있는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처럼 아주 낡은 구옥이었다.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지고 갈라진 하얀 건물은 영화 속에 나오는 그것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집은 3층에 있다고 했는데, 나는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이미 실망감에 의욕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집은 보고 가야지, 내부는 좋을 수도 있잖아. 하는 마음으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만나기로 한 시각에 집주인은 계속 통화 중이었고, 어쩌다 신호음이 걸렸을 때에는 전화를 그냥 툭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15분 정도 그렇게 기다리고 난 후에야 나는 3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 보이던 그 집주인이 나와의 약속을 잊어버린 모양이라 짐작하며.
똑똑똑
세 차례 정도 노크를 한 뒤에야 한 50대 남성이 잠옷바람으로 나를 맞았다.
"저... 집 보러 왔는데요. 오늘 4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계속 통화 중이셔서요."
"오늘 집 보기로 하셨어요?"
"네, 혹시 여기가 망원동 00 아닌가요?"
"아 맞아요. 그 집입니다. 제가 집을 내놓았는데 아무래도 부동산이랑 연락하신 것 같네요."
알고 보니 보증금을 맞춰주겠다며 일단 집을 보러 오라고 한 뒤, 약속 시각에 전화를 받지 않은 그는 집주인이 아니라 동네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나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집주인은 친절하게 집을 보여줬다. 광고대로 3룸은 3룸인데 공간만 넓은 뿐 이상한 구조의 집이라는 인상이 먼저 들었다. 최근 리모델링을 했다는데 마감 처리에서부터 여기저기 너무 급히 집을 고친 흔적이 보였고 냉장고, 세탁기, TV까지 전부 옵션으로 준다는 조건도 에어컨을 빼면 모두 잘못된 정보였다. 게다가 집주인은 애초에 1억에 60이 아니면 집을 넘길 생각이 없다며 내가 요청한 1억에 30이라는 조건에는 코웃음을 쳤다.
사실 전세로 1억을 해준다고 해도 별로 살고 싶지 않은 집이었지만 이런 곳이 망원동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증금 1억에 매달 60만 원이라니. 서울 집값에 다시 한 번 놀라고, 트렌디한 지역에 살겠다는 나의 바람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이었는지 깨닫는 이상한 날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피터팬 카페에 들어가 좋은 매물이 없는지 살펴보는 일을 늦주지 않았다. 나중에는 마치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5분 단위로 계속 카페를 들락거렸다. 종종 실망하는 일도 있었지만 여전히 직방이나 다방보다는 믿을 만한 매물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간의 거래이다 보니, 약속을 잡아놓고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집을 보러 가는 도중 방금 계약이 됐다며 연락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집을 구하는 약 한 달 반 동안의 시간동안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크게 실망하지 않는 것에 대해 배운 것 같다. 그래야만 약해질대로 약해진 멘탈을 부여잡고 보금자리를 찾은 일을 계속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특정 매물에 대한 기대감을 버릴 수 있게 되었을 즈음, 나는 이 집을 만났다.
- 4부에서 계속 -